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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국립공원의 산

설악산 오색에서 공룡의 등에 올라 타고 내설악으로 향하다

장한림 2022. 3. 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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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국립공원

 

196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는 설악산은 1970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제적으로도 그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1982년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인제, 고성, 양양군과 속초시에 걸쳐 있는 설악산국립공원의 총면적은 398.237㎢에 이른다.  

 

 


 

 

오색에서 대청봉 올라 공룡능선 거쳐 용대리로 하산

 

 

 

 

천화대의 으뜸 범봉을 필두로 왕관봉, 희야봉을 

지척에서 접하니 언제나처럼 가슴이 뜨거워진다. 

송곳처럼 날 세워 파란 천을 뚫고 쭉쭉 뻗어 하늘 향해 

악수를 청하는 역발산기개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공룡의 등에 올라타는 건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6월 말 새벽 세 시. 설악산 정상을 오르는 최단코스, 남설악 오색 탐방안내소의 개방에 맞춰 설악산을 오른다. 

여섯 번째 들어서는 오색 들머리는 오를 때마다 버겁다. 표고 500m 지점에서 시작하여 정상 1708m의 대청봉까지 도상거리 5km의 가파른 수직 오르막. 이길 만큼은 다신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또 오게 된다.

여기가 설악산이고 이번 산행이 나로 인해 등산에 깊이 맛 들인 친구들과의 동행이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특히 가고자 하는 명분, 와야 할 이유가 어떻게든 만들어진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 동이 터온다. 설악폭포 지나 제2 쉼터에 이르러서야 헤드 랜턴을 끄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돌리니 이른 새벽인데도 땀이 샘솟듯 한다. 오색 들머리의 다른 등산객들보다 먼저 새벽 정기를 마시고자 앞서 걸었다. 놓치면 마냥 처질 새라 병소가 바짝 따라붙었고, 영빈이와 계원이는 조금 뒤처졌다.

 

“힘들지?”

“응. 그래도 죽을 거 같진 않아.”

 

대견하다. 병소한테는 첫 대청봉 등정이다. 그런데도 호기롭게 어둠을 뚫고 오르는 가파름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 오른쪽으로 화채능선이 반만 보인다. 운무에 가린 능선의 긴 곡선이 오늘따라 더 정겹다. 바위에 걸터앉아 설악에서 열리는 여명을 둘러본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살가움이 넘친다.

 

오색에서 대청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 힘들다, 그래도 날 밝히며 하늘 향해 오른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편하게 올라올 수 있을 거야.”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케이블카가 생긴단 말이야?”

“그래선 안 되는데 자꾸 그런 목소리가 커지나 봐.”

“이제 막 설악산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애정이 생기려는데 그 여자의 문신을 본 꼴이야.”

“하하하! 기막힌 19금 비유일세.” 

 

병소는 설악산의 케이블카 설치를 문신에 빗대면서까지 핏대를 올렸다. 산은 찾는 이들의 편의를 도모하여 빠르게 정상을 접하게 하는 탐방지가 아니다. 산은 힘들고 불편한 곳이기에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다가 모처럼 찾은 대자연에서마저 편안함을 추구하려고 오는 장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순리를 거슬러 이익을 좇는 이들에 의해 산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산이 자연의 섭리를 빼앗겨가면서 그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자연의 가치를 돈에 비유할 수 없음이다.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거나 산악열차를 개통하겠다는 발상으로 대자연에 생채기를 내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다운 거야.”

“동감일세.”

 

사랑하는 설악산이 빨간 루주나 아이섀도로, 더더욱 문신 따위로 천혜의 자연미가 훼손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다시 잰걸음으로 새벽 공기를 가른다. 

 

“병소야, 먼저 올라가.”

 

대청봉에 이르러 처녀 등정인 정상을 친구가 먼저 밟을 수 있도록 한다. 초보 때 선배가 양보했던 정상 등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작으면서도 큰 즐거움이다.

 

‘양양이라네!’

 

대청에서 여느 때와 달리 더욱 뿌듯한 행복감을 느끼는 건 비록 고된 장정이지만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동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산을 홀로 다녀보았으므로 혼자가 아닌 동행에 큰 희열을 느꼈음이리라.

 

“양양에서 제일 높은 곳이 여기라는 걸 기억하게나.”

 

대청의 정상석에서 악수를 나누는 건 커다란 희열이다

 

1708m, 강원 최고봉이자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표고로는 남한 3위의 산. 그러나 설악산은 명함에 찍힌 직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산이 아니다. 설악산은 그 자체로 존재가 주목받고 오르는 이로 하여금 자존감을 지니게 하는 그런 곳이다. 

 

“우와~ 대박!”

 

처음 밟는 설악산 정상, 어제저녁나절부터 설렘과 긴장감에 결국 잠까지 설쳤다는 친구 병소와 영빈이었다. 그들의 뿌듯함은 운무가 걷히면서 드러난 외설악 천불동의 장관을 보며 탄성으로 이어진다. 

 

운무가 걷히자 중청대피소와 중청봉이 드러났다

 

운해가 차오를 때나 맑은 날이나 설악 정상에서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엷은 안개가 오락가락 시야를 가렸다가 열어주기를 반복한다. 600m 아래 중청대피소가 사라졌다가는 다시 보인다.

시계가 좀 흐리면 어떠하랴. 우리가 대청의 정상석에 나란히 서서 악수하고 있는데. 늘 느끼는 거지만 정상은 그만큼 땀 흘린 자에게만 자리를 내어준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서는 만끽할 수 없는 희열이다. 이들과 함께 설악의 최고봉을 함께 공유한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저기가 오늘 우리가 넘어야 할 공룡능선이야.”

 

스틱으로 가야할 곳을 짚어본다

 

스틱으로 아래쪽 능선을 가리키는데 공룡이 등줄기를 들이대고 어서 올라타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더니 금세 안갯속으로 내뺀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 1-24번지’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의 안부에 있는 중청대피소의 주소. 거기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외설악과 속초시, 동해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위치에 빨간 우체통에 세워져 있다. 정식 명칭 ‘설악산 대청봉 우체통’의 안내판에 이렇게 적혀있다.

 

“1708M, 5604 Ft 이 우체통은 국토의 근간인 백두대간 마루금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우체통입니다. 명산 설악을 찾는 국민들을 위하여 속초우체국과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가 공동으로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분이 보내는 편지와 엽서는 매주 1회 수집하여 우체국을 통해 전국 각지로 보내고 있습니다. 설악의 아름다운 추억을 우편엽서에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빨간 우체통 옆에서 대청봉을 배경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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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대신 우체통을 어루만지며 두고두고 오로라처럼 생성될 추억을 담아 넣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침 8시를 지나고 있다. 

소청으로 향하면서 내려다보는 설악골에 여전히 안개가 머무르고 삼각 상투 화채봉이 흐릿한 걸 보니 공룡능선에 이를 즈음엔 날이 쾌청할 거란 생각이 든다. 친구들이 공룡의 가죽 비늘을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꼿꼿하게 날 세운 공룡의 등에서 묘한 어지럼증을 느꼈었거든. 처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도 그랬으면…….”

 

소청을 지나 희운각으로 가는 길, 초여름이긴 하지만 산중 아침나절인데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무덥다. 희운각 대피소 바로 아래 계곡에서 흘린 땀을 씻어낸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룡의 등줄기를 올라타게 된다. 이제부턴 모든 게 쭉쭉 솟아있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공룡 우리에 들어서며 설악산이 왜 남성미가 강한지를 보게 된다. 

 

“저걸 넘어간단 말이야?”

 

무너미고개 전망대에서 신선대를 올려다보며 영빈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자신 없으면 왔던 길 되돌아가든지.”

 

공룡의 품으로 더 가까이 파고든다

 

공룡능선 남쪽 들머리를 마치 에버랜드 입구로 착각하는지 병소는 마냥 들떠있고 자신감이 넘친다. 한때 공룡능선을 경험했느냐의 여부로 산악인의 등급을 가리기도 했었다. 나도 그랬었지만, 친구들도 그런 공룡능선에 경외감을 지니고 온 것이었다.

 

“나만 진급에서 빠질 순 없잖아.”

 

빼도 박을 수도 없겠다며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뒤따라온 영빈이의 입이 다시 벌려진 건 공룡 제1봉 신선대에 올라서다. 이쯤에서 귀까지 먹먹해지는 건 대뇌의 모든 사고를 중지하라는 신호다. 오로지 눈으로만 보고, 본 그대로 느끼라는 알람이다. 보고 누리며 감상의 시야와 감동의 폭을 더욱 넓히라는 의미이다. 

 

“아아~ 이 정도였다니. 이게 바로 설악산이었구나.”

 

신선대에서 뒤로 1275봉과 나한봉, 천화대를 함께 담았다

 

낙차 심한 절벽을 타고 오르는 반투명 안개가 걷히면서 환히 드러난 천화대에 탄성이 터지고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운다. 멀리 역광 받은 화채능선이 은빛 그림자 드리우고 모습 드러낸 화채봉과 왼편 달마봉이 살갑게 손짓한다.

 

공룡능선 중에서 가장 공룡의 등줄기다운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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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대의 으뜸 범봉을 필두로 왕관봉, 희야봉을 지척에서 접하니 언제나처럼 가슴이 뜨거워진다. 송곳처럼 날 세워 파란 천을 뚫고 쭉쭉 뻗어 하늘 향해 악수를 청하는 역발산기개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장군봉, 유선대를 접하고 설악골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이다.

지금부터 가야 할 길, 1275봉, 나한봉과 마등령. 힘이 부치면 마라톤 완주코스가 될 수 있고 즐기면 일품 코스 요리일 수도 있는 곳. 그게 바로 공룡의 극단 양면이다. 오늘 산행을 이끄는 대장으로서 일행들에게 꿀맛 요리를 해주고 싶지만 그건 먹는 이의 입맛이 좌우할 것이다. 아직 많은 길이 남아 있음이다.

 

공룡의 품에 들어서자 바로 어지럽다

 

신선대를 내려서면서 공룡의 품 안으로 파고들게 된다. 아니 빨려 들게 된다. 외설악 공룡의 등에 올라탔다는 사실만으로도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바삐 가려거든 절대 설악엔 오지 마시라. 설악은 걸음보다 눈이 바쁜 곳이기 때문이다. 가다 멈추길 반복하며 다양한 형태의 공룡 닮은 바위들을 보게 되는 공룡능선의 품 안은 특히 그러하다.

 

“공룡아! 우리가 무겁다고 너무 심히 꿈틀거리진 말아라.”

 

숱한 너덜 바윗길, 쇠줄 잡고 오르내리길 수차례 반복하며 1275봉 아래에 이른다. 

 

“다들 그 자리에 서봐.”

 

다시 만나는 1275봉은 여전히 의연하다

 

공룡능선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높이 1275m로 가장 높고 훌쩍 마음에 드는 봉우리인지라 1275봉 상단이 잡히는 안부에 일행들을 서게 하고 셔터를 누른다. 

여길 지나 정면으로 나한봉을 마주하게 되는데 공룡능선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구간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체력소모가 클 즈음이다. 미끄럽기까지 해서 더 힘이 부치지만, 간간이 싱그러운 햇빛과 하늘을 찌르는 암봉들의 자태가 펄펄 기운 넘치는 충만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저기 넘어서면 공룡 우리에서 벗어나는 거야.”

“그럼 다 온 거야?”

“다 온 거냐고? 이제 2라운드 마치는 건데.”

 

오색에서 대청까지 1라운드라 치면, 2라운드 공룡능선을 지나 마등령에서 백담사 주차장까지를 마지막 3라운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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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봉이 보이자 공룡의 등줄기에서 내려서는 기분이다

 

백두대간 마등령은 금강굴, 비선대, 와선대를 지나 신흥사로 내려가는 외설악과 오세암, 백담사로 내려가는 내설악 그리고 북쪽 미시령으로 뻗는 출입통제구간의 연결점이자 경계이다. 말 등에 올라 동해와 북면의 황철봉, 지금까지 온 공룡능선을 두루 둘러보다가 예정대로 내설악 백담사 쪽으로 길을 잡는다.

 

내설악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섰다

 

다양한 루트가 있고 특별한 볼거리가 있어 늘 처음처럼 새로운 산행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설악의 품이다. 그 품속을 오가다 보면 가까운 일가를 들르는 것처럼 다감하고 다복한 느낌이다. 

친가가 있는 도심의 외설악에서 수렴동 지나 용대리를 날머리로 하는 내설악으로 내려가다 다리가 뻐근할 즈음 시원한 식수를 제공해 주고 감자를 삶아 오가는 이들이 요기할 수 있게 해주는 오세암五歲庵에 이르자 오늘은 맛깔스럽게 고구마를 삶아놓았다. 편안한 자리를 골라 나란히 걸터앉아 고구마를 하나씩 먹는다.

 

“여기 오세암은 이름처럼 다섯 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암자야.” 

 

조선 중엽, 설악산 관음암에서 수도하던 설정 스님이 부리나케 고향인 충청도 두메산골로 향했다.

 

“스님! 어서 고향으로 가보시지요.” 

 

꿈에서 고향을 찾아가라는 관세음보살의 계시대로 30여 년 만에 찾은 고향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시주 때문에 오셨다면 괜한 헛걸음을 하셨소이다. 얼마 전 괴질이 번져 이 마을 사람들 모두 떼죽음을 당하고 세 살 먹은 어린아이만 살아 있다오.”

 

알고 보니 어린아이는 형님의 아들이었다. 설정은 아이를 등에 업고 설악산으로 돌아왔다. 가문의 대를 잇게 하려고 관세음보살이 고향으로 보냈던 것으로 여겼다. 암자 생활에 잘 적응하던 아이가 네 살이 된 이듬해 늦가을 무렵, 설정은 겨우내 먹을 월동준비를 위해 설악산을 넘어 양양에 가야 했다.

 

“저기 관세음보살 앞에서 손 모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너를 지켜주실 테니 무서워하지 말아라.” 

 

어린 조카가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 길을 나섰다. 양양 물치 장터에서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내린 폭설로 길이 막히더니 날이 가도 그치지 않는 눈은 온 설악산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그토록 아름답던 대청봉과 소청봉도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구나.”

 

설정 스님은 자신에게 자연의 섭리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었음을 탓하고 조카를 염려하다 병석에 눕고 말았다. 어린 조카 걱정에 시름시름 앓으며 까맣게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 눈이 그치고 겨우 길이 열리자 벌떡 기운을 차려 몸을 일으켰다. 

대청봉에 도착하니 관음암이 있는 골짜기에서 한줄기 서광이 하늘로 뻗어 오르는 게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 조카를 불렀는데 법당 안에서 은은히 목탁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죽었을 거라고 여겼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법당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스님 오시기만 기다리며 관세음보살을 외웠더니 매번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저를 돌봐주셨어요. 밥도 지어주고 같이 자고 놀아주셨어요.”

 

감동한 설정 스님은 그날 바로 암자 이름을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

 

“다섯 살짜리가 지킨 암자라는 뜻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절실하면 어린 동자도 불법을 깨우칠 수 있다는 의미겠지.”

“영빈이도 조금 늦긴 했지만, 머리 깎고 여기서 관세음보살님이 해주시는 밥 먹고 지내는 게 어때?”

“난 육식동물이잖아.” 

 

다섯 살 동자승이 관세음보살과 함께했던 조그만 방을 들여다보면서 관음 영험 설화의 의미를 새겨보는데 또 한 명의 옛사람이 떠오른다. 

 

“뜬구름 세월을 살았었구나.”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출가하여 오세암에 머물렀었다. 

 

“김시습도 이미 다섯 살 때 일을 낸 사람이었지.”

“세종대왕 앞에서 한시를 지어 인정받은 때가 겨우 다섯 살 때라지?”

“맞아. 그 후 김시습은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천재라는 뜻으로 오세五歲라는 명칭이 붙어 다녔다더군.”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 사육신의 비참한 죽음을 겪으며 보던 책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역모로 죽은 죄인의 시신을 수습하는 건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을 당시 김시습은 비 오는 날 밤, 능지처참을 당해 길거리에 뿌려진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었다. 지금의 사육신 묘소가 있는 곳이다.

다섯 살에 대학까지 통달하여 이름을 떨칠 만큼 재능을 지녔지만, 시대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더러운 세상 오세汚世가 오면서 오세五歲의 학식은 세상에 덧입혀지지 못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내력을 지닌 오세암은 아늑하기로는 설악산의 사찰 중에서 으뜸이란 생각이다. 그런 오세암을 나서는데 오늘 밤 가을비가 내려 암자의 지붕을 축축하게 적시면서 더욱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것만 같다.  

    

깊은 산 가을밤에 빗소리 구슬프다 

저 스님 무슨 생각에 눈을 감고 앉았는고 

나도 따라 눈을 감고 앉아 빗소리를 들어 본다 

빗소리 눈감고 듣지 말게 가슴 젖어드느니  

   

- 오세암의 밤 / 노산 이은상 -

  

영시암 앞에서 잠시 멈춰선다

  

“여기 영시암에도 짚고 넘어갈 한 사람이 있지.”

 

시위를 떠난 화살이 돌아오지 않듯 영시암永矢庵이라는 이름은 이 절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의 뜻을 담고 있다. 

 

‘내 삶 괴로워 즐거움이 없고 늙어 설악 산중에 들어와 여기 영시암을 지었네.’

 

조선 후기 유학자로 성리학과 문장에 능한 삼연 김창흡이 그 주인공이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영의정이던 아버지 김수흥이 파직되었다가 사약을 받고 죽자 설악산으로 들어왔다.

후궁인 장희빈에게 빠진 숙종이 인현왕후 민 씨를 폐비하려 했을 때 이를 반대하던 이들을 유배시키고 이듬해 중전 민 씨를 폐했다. 그 뒤 희빈 장 씨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희빈을 왕비에 앉히면서 서인 집권 10년 만에 남인에게 정권을 빼앗긴 국면을 기사환국이라 한다. 그러나 권력의 무상함을 화무십일홍에 비유하지 않았던가. 

후에 장희빈이 폐위되고 자결하게 되면서 권력은 다시 서인과 노론에게 넘어가는 붕당정치가 이어진다. 희빈 장 씨의 아들 경종은 숙종의 또 다른 후궁 숙빈 최 씨의 아들이자 경종의 이복동생 영조에게 정권을 넘기게 되고.

 

백담계곡에서 백담사를 들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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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00대 명산 탐방기와 산행안내가 글,

사진, 동영상과 함께 상세히 수록된 채널입니다.


조선 역사를 되짚다가 수렴동 계곡을 끼고 걸어 백담계곡에 이르러서 땀 젖은 얼굴을 씻는다. 백담사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꺾어지는 도로를 따라 용대리에 이르면서 길고도 험한 여정을 마친다. 비릿한 황태덕장이 있는 용대리에서 황탯국에 반주를 곁들이니 긴 여정의 피로가 바로 가신다. 

 

“다들 수고했어. 멋진 산행이었어.”

“멋진 역사여행이기도 했어.” 

 

공룡능선을 함께 걸었다는 건 삶의 동반이다. 인생의 난관을 함께 풀어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용대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때 / 초여름

곳 / 오색 탐방안내소 - 설악폭포 - 대청봉 - 중청대피소 - 중청 - 소청 - 희운각 대피소 - 공룡능선 시점 - 신선대 - 1275봉 - 나한봉 - 마등령 삼거리 - 오세암 - 영시암 - 수렴동 계곡 - 백담사 탐방안내소 - 백담사 주차장 - 용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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