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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옥순봉 출렁다리

장한림 2022. 3. 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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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절경, 구담봉, 옥순봉, 제비봉에서 황홀경에 빠지다

 

주소 :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75-7

 

https://www.youtube.com/watch?v=XGtvLzZAK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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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걸음 걷다가 아홉 번 뒤돌아볼 만큼의 절경이로다.”

 

조선 연산군 때 사림파의 언관言官이었던 김일손이 이곳을 지나던 중 절경에 도취해 이처럼 찬사를 토해냈다. 그 자리에서 이곳을 단구협丹丘峽이라 칭했는데 바로 충주호 유람선 관광지로 유명한 장회나루를 일컫는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충주호 관광의 최고 절경지로 꼽히는 곳이다.

 

 

눈에 비치는 곳마다 산수화 관람장

 

1548년 단양군수로 재임하던 퇴계 이황은 중국의 소상팔경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단양이라 여기고 훗날 다른 지방 사람들이 단양에 찾아오면 꼭 가보도록 명승지 여덟 곳을 정하였는데 일컬어 단양팔경이다. 

남한강 상류의 도담삼봉과 석문에 충주호의 대표적 명소인 구담봉과 옥순봉을 포함하고 선암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장식하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과 운선구곡의 사인암을 말한다.

조선왕조 개국공신 정도전은 단양에 은거하다가 도담삼봉에서 본떠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다. 또한 김일손, 이중환, 이지함 등 수많은 학자가 단양의 풍광을 극찬했고 산수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는 옥순봉도를, 겸재 정선은 구담봉도를 화폭에 담아 단양팔경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바 있으니 이곳을 탐방하는 건 한 폭 동양화에 묻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충주와 단양을 잇는 36번 국도변에 청풍호반과 어우러진 단양팔경의 경승지 구담봉과 옥순봉이 있다.

 

“곁에서 보는 것과 직접 접하여 어우러지는 느낌은 그 질이 같을 수 없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단양읍의 경계를 이루는 구담봉龜潭峰은 이웃한 옥순봉玉筍峰과 함께 충주호 수상 관광의 백미이지만 다른 느낌의 질감을 맛보며 직접 어우러지고자 동양화 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이퇴계, 옥순봉을 탐하다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계란재 공원 지킴터가 두 봉우리를 오르는 들머리이자 날머리이다. 봄을 흘려보내고 여름으로 접어드는 계절의 산과 물은 면면이 초록이다. 완만한 비탈을 올라 372m 고지 삼거리에 이르면 왼쪽으로 옥순봉, 오른쪽으로는 구담봉 가는 길이다. 구담봉을 먼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옥순봉 가는 길을 코스로 잡았다.

잔잔하게 그늘진 숲길을 지나면서 속이 시원할 정도로 조망이 트인다. 왼편으로 말목산과 오늘 산행하게 될 제비봉이 물을 가르고 솟아있는 걸 보면서 감탄 일색이다. 충주호 건너 가은산과 그 뒤로 금수산이 길게 뻗어있다. 

고개를 돌리면 제비봉 주변의 기암들이 근육질의 남성미를 뽐내고 멀리 소백산 마루금이 흐릿한 암영으로 비추어 눈에 들어차는 곳마다 멋지게 붓질한 캔버스이다. 

구담봉이 충주호에 하반신을 담그고 있다

 

 

충주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흐름을 멈춰 고요하고 정숙하다. 앞에 보이는 남한강 물줄기의 장회탄長淮灘은 노를 젓지 않으면 저절로 배가 밀려날 정도로 물살이 센 곳이었는데 충주댐 건설 이후 잔잔한 호수로 변했다. 바위 절벽의 일부는 물에 잠겼어도 그 외관은 외려 넉넉해졌다. 변화에 적응하듯 넓어진 물길과 잘 조화된 풍광을 보여준다.

구담봉으로 오르는 비탈 암릉의 지그재그 이어진 층층 계단이 이쪽 맞은편에서는 아찔할 정도로 높아 보인다. 이 지점에서 숨을 돌렸다가 건너편으로 향한다. 험준한 바윗길을 타고 내려가 정상 암벽 아래에서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코스를 땀깨나 흘리며 올라야 한다.

거북과 연관 지어 이름 붙인 구담봉은 깎아지른 절벽이 거북의 형상이라고도 하고, 물에 잠긴 바위벽에 거북 무늬가 있다고도 하는데 지금 내려다보는 물밑으로 거북이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해발 330m라고 적힌 정상석이 놓여있고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굽이돌며 바위산의 절벽을 깎아내고 산과 산들이 간격을 내주어 물길을 이룬 충주호가 길고 깊고 또 아련하다. 유영하듯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내는 유람선의 모습도 애잔한 낭만을 느끼게 한다.

전망대는 산수화를 감상하는 최적격의 장소이다. 층층이 쌓이고 켜켜이 주름진 암벽 사면마다 조각품이고, 절벽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조경의 극치를 이룬다. 

트였다가 막히고 다시 트이는 공간으로 유유한 흐름을 이으며 전시품들을 관람시켜 준다. 내륙의 바다인 충주호는 한려수도에 비견할 만하다. 구담봉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여유로워지는 마음으로 퇴계 이황의 시를 음미해본다.

     

새벽에 구담 지나노라니 달은 산마루에 걸려있네 曉過龜潭月在山

높이 웅크린 구담봉은 무슨 생각 저리 깊을까 高居想像有無間

예 살던 신선은 이미 다른 산으로 숨었으리라 主人今作他山隱

다만 학과 원숭이 울고 구름 한가로이 흘러갈 뿐 鶴怨猿啼雲自閒

 

     

두향이 흠모한 퇴계  

   

가은산과 금수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물길로 이어지는 제비봉에 눈길을 두면서 한 가지 의문을 지니게 된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을 흠모했던 관기 두향은 죽으면서 퇴계와 함께 노닐던 강가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강선대가 물에 잠기자 퇴계의 후손들이 두향의 묘를 제비봉 기슭에 이장하고 두향 지묘杜香之墓라는 묘비를 세워 지금까지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정실부인이나 소실도 아니었고 따라서 가문의 범주에 전혀 들지 않는 기생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의아한 것이다. 

두향의 묘가 있는 제비봉 기슭을 더듬다가 구담봉을 내려선다. 구담봉에서 옥순봉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두 봉우리는 능선을 따라 1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행정구역상 구담봉은 단양이고 옥순봉은 제천에 속하지만, 이 두 봉우리는 형제처럼 혹은 남매처럼, 어쩌면 하나처럼 한 번의 방문에 함께 보게끔 하는 곳이다. 

구담봉과 더불어 단구협 제일 절경으로 꼽히는 옥순봉은 희고 푸른 멋진 바위들이 힘차게 솟은 대나무의 싹과 흡사하여 이름 붙여졌다. 유람선을 타고 보면 비 온 후 쑥쑥 자라는 죽순을 연상하게 한다. 

372m 고지인 삼거리에서 옥순봉까지는 구담봉에 비해 순탄하다. 경사가 완만한 숲길을 빠져나가면 바위 구간이 나오는데 옥순봉이 멀지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바위 구간을 오르다가 좌우로 갈라진 길에서 좌측의 정상에 앞서 우측 봉우리로 먼저 향한다.

봉우리 언저리 바위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충주호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아찔하다. 유람선도 이곳 옥순봉의 절경에 도취한 듯 바로 절벽 밑에서 멈춰 서있다. 노을 물드는 충주호반의 풍경도 여기 옥순봉에서 보면 탄성이 그치지 않을 정도라는데 상상이 가고 그림이 그려진다.

옥순봉의 절경에 탄복한 이황은 당시 청풍(지금의 제천)에 속한 옥순봉을 단양에 편입시켜주길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 즉 단양의 관문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옥순봉을 둘러싼 제천과 단양 두 자치단체의 신경전은 지금도 여전하다니 옥순봉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옥순봉 정상(해발 286m)에서는 아까 구담봉에서 볼 수 없던 충주호 하류까지 긴 흐름을 볼 수 있고 금수산 정상과 가은산의 암봉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으며 멀리 뾰족하게 솟은 월악산 영봉이 시야에 잡힌다. 여기서 제비봉을 보면 두향의 이장한 묫자리가 쉽게 가늠된다.

단양군수로 부임한 48살의 퇴계 이황은 고을 관기였던 18세의 어린 두향을 만난다. 30년 격차와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라고 해야 할까. 화담 서경덕과 황진이처럼 기생과 양반의 멜로는 다양하게 전해왔다. 

두향은 대나무처럼 올곧은 퇴계를 연모하게 되었고 퇴계도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터라 공허한 가슴에 두향이 스며드는 걸 어쩌지 못한다.

시와 서예와 거문고에 능하고 매화를 좋아했던 두향은 퇴계의 곁에서 거문고를 타며 품은 연정을 지켜갔다. 그렇게 아홉 달이 지나 퇴계는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게 된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깊은 어둠만큼이나 두 사람의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적을 깨고 퇴계가 입을 열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死別己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生別常惻測.”

 

두향은 조용히 먹을 갈고 붓을 들더니 한 수 시를 적는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울 때

어느덧 술 다하고 임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싶구나 

    

단양을 떠날 때 두향은 퇴계의 짐 보따리에 곱게 싼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 하나를 넣었다. 이때부터 퇴계는 평생토록 이 매화를 두향으로 여기듯 애지중지했다.

 

“이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겨라.”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말년에 안동에 은거하던 퇴계는 나이가 들어 초췌해지자 매화에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를 옮기라고 한 것이다. 

매화를 주제로 수많은 시를 지었던 퇴계였다. 아마도 이 시는 두향을 염두에 두며 작시한 건 아니었을까.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一樹庭梅雪滿枝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風塵湖海夢差池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玉堂坐對春宵月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鴻雁聲中有所思  

   

두 사람은 1570년 퇴계가 69세의 나이로 임종할 때까지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와 헤어진 두향은 남한강 변 구담봉 근처에 초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했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충북 단양 사람인 절세가인 두향과 대학자 퇴계의 아름다운 인연을 새기노라면 정사인가, 야사인가는 전혀 관심 밖이다. 송도 명기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의 만남에 이은 시즌 2를 보는 느낌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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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임 찾아 초혼가를 부르다

   

계란재로 원점 회귀하여 그리 멀지 않은 장회나루로 이동한다. 구담봉과 옥순봉을 다녀와 이어서 제비봉을 오르기로 한다. 

제비봉 공원 지킴터를 통과해서 길게 위로 뻗은 통나무 계단을 오르면서도 자꾸만 고개를 돌리게 되고 아래쪽으로 눈길을 두게 된다. 장회나루 앞으로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도 시원하고 다녀온 구담봉과 옥순봉도 장쾌한 기상으로 깊은 물에 거대한 하반신을 담그고 있는데 눈에 담는 것마다 눈길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제비봉으로 향하는 암릉 계단길이 아찔하게 솟구쳤다

 

경사 급한 철제 계단을 또 오르지만 오를수록 주변 풍광은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기에 오름길이 버겁지 않다. 바위를 뚫고 뿌리를 뻗은 소나무는 그 강인함만큼이나 유연한 신축성을 보여준다.

물의 흐름을 따라 기둥 줄기를 호수 쪽으로 굽혀서도 싱싱하게 가지를 뻗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생장의 기운을 소진할 리 없겠지만 만일 고사목이 되더라도 바위 깊이 박은 뿌리만큼은 사력을 다해 뽑히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공터처럼 널찍한 제비봉 정상(해발 721m)에 많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상에서 내다보는 월악산의 겹겹 봉우리들이 오후 햇빛을 받아 찬란하고도 옹골찬 위상을 보여준다.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라보면 부챗살처럼 드리운 바위 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편 것 같아 제비봉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물 찬 제비에 부합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탐방객들이 줄지은 하산로의 모습도 볼만한 광경이다. 에메랄드 물빛과 짙푸른 녹음 위로 형형색색의 잔잔한 움직임이 무한한 동지애를 느끼게 한다. 545m 봉에서 숨을 돌리며 북쪽으로 호수 건너편의 말목산 끝봉 아래를 찬찬히 살펴보면 물에 잠겨 상단만 살짝 보이는 강선대와 그 왼쪽의 외딴 봉분을 가늠할 수 있다. 

천하절경에 자리 잡은 두향의 묘소이다. 1970년대 소설가 정비석은 조선일보에 연재한 명기 열전에서 두향 편을 쓴 적이 있었다. 

두향의 묘를 찾아 사비로 비석을 세우고 나중에 충주댐으로 수몰될 상황이 되자 정비석 선생이 발 벗고 나서 건의함으로써 이 지역주민들과 퇴계 후손들의 노력으로 강선대 아래 30여 m 지점에 있던 두향의 묘를 강선대 왼쪽 위인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온 퇴계가 유명을 달리하자 부음을 들은 두향은 나흘을 걸어 안동으로 간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으나 그것마저 빈소가 내려다보이는 뒷산 언덕에서 숨죽여 통곡하는 게 다였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강선대에 올라 신주를 모셔놓고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초혼招魂이라 함은 사람이 죽어 이미 떠난 혼을 불러내려는 간절한 소망을 의미한다지 않던가.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상상력이 보태져 각색된 멜로일 수도 있겠으나 퇴계와 두향의 사랑 이야기를 접하면서는 이해 여부를 떠나 애틋함 그대로 느끼고 싶어 진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그리고 눈을 감기 직전 퇴계 이황의 마지막 한마디는 두향을 잊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단양에서 떠나는 퇴계에게 두향이 주었던 매화는 피고 또 피고, 대를 잇고 이어 지금까지도 안동 도산서원 앞에 그대로 피고 있다. 

내로남불이라는 의미처럼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 그녀의 사랑에 생채기를 입힐까 조바심이 생기는 것이다. 두고두고 금이 가지 않는 로맨스로 후세에도 순수하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퇴계 사후 150년 뒤에 ‎조선 중기의 문인 월암 이광려는 두향의 묘를 참배하고 시 한 수를 바쳤다.  

    

외로운 무덤 하나 길가에 누웠는데

거친 모래밭엔 꽃도 붉게 피었네

두향의 이름 잊힐 때면

강선대 바위도 사라지겠지  

   

퇴계를 향한 마음이 평생 변치 않았던 두향을 기리고자 퇴계의 후손들은 지금도 두향의 무덤에 참배하며 묘소를 관리하고 있다. 

 

두향의 묘에 시선을 두고 매화를 노래한 퇴계의 시를 음미해본다

 

 

때 / 초여름

곳 / 계란재 공원 지킴터 – 372m 봉 삼거리 - 구담봉 – 372m 봉 삼거리 - 옥순봉 – 계란재 공원 지킴터 - 장회나루 – 제비봉 공원 지킴터 - 제비봉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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