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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국립공원의 산

북한산 13성문 종주_ 열세 개의 성문을 통과하는 소통의 길

장한림 2022. 3. 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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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국립공원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 자연공원인 북한산국립공원은 1983년 열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수도권의 허파 역할을 한다. 면적은 76.922㎢로 우이령을 경계로 도봉산 지역과 남쪽으로 북한산 지역으로 나뉜다.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100여 개의 사찰, 암자가 있다.

 


 

 

북한산 원효봉으로 올라 의상능선으로 내려서며 13개의 성문을 통과하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산길은 살아온 삶처럼 회한에 젖어들게 할 때가 있다.

삶이 산과 다른 건 뿌듯한 성취감이 뒤돌아본 

그곳에 반드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취가 사라진 행적은 얼마나 공허하고 슬픈가.

 

     

                

북한산에 북한산성이 있고 거기 열세 개의 문이 있다

     

 

북한산에 대한 찬사나 칭송은 그 어떤 표현도 보편에 불과할 뿐이다. 영글지 못한 단어나 문장으로 북한산의 실체를 표현하는 것은 자칫 경솔한 짓일 수 있다. 올 때마다 늘 새록새록 새롭기에 북한산을 오고 또 오게 된다. 

어떤 이가 말했다. 누군가를 만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환희에 젖고 그가 없어 죽을 것 같은 사랑은 길어봐야 2년 반을 넘지 못한다고. 십수 년이 넘도록 같은 길을 반복하며 다녔어도 북한산은 싫증 나기는커녕 정이 깊어지고 노상 싱그럽기만 하다. 

산을 좋아하는 수도권 주민들에게 북한산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주말과 휴일이면 수많은 산객들이 북한산과 도봉산으로 몰린다. 이곳을 경유하는 수도권 전철은 산행 열차가 된다. 1994년에 단위면적당 탐방객이 가장 많은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곳에 북한산이 있다는 게 마음을 풍족하게 한다.

진달래 능선, 의상능선, 칼바위 능선, 사자능선, 탕춘대 능선, 형제봉 능선, 응봉능선, 비봉능선, 숨은 벽 능선 등 수많은 능선에서 백운대를 비롯해 만경대, 인수봉, 노적봉, 향로봉, 비봉, 문수봉, 보현봉, 원효봉 등 40여 봉우리로 오르는 길의 조합이 600여 가지에 이른다. 또 진관사, 도선사, 화계사, 태고사, 상운사, 승가사 등 많은 사찰과 전란이 일어났을 때 왕이 임시로 거처했던 이궁지離宮址 등 문화·역사유적이 무궁무진하다.

북한산성은 서기 132년 백제의 도성이었던 위례성 북쪽의 방어성으로 쌓았는데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있는 접경지였기에 삼국이 쟁탈전을 치르면서 수차례 바꿔가며 점령하였다. 고려 시대에도 거란이 침입하면서 증축하였고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도 한 곳이다.

 조선 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에 시달리자 1659년 효종은 송시열로 하여금 도성 외곽을 지키는 산성으로 쌓게 하였으며, 1711년 숙종 때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여 둘레 7620보 크기의 돌로 쌓은 성벽을 완성하였다. 이처럼 역사적 부침이 있었던 북한산성 이건만 그 산성을 따라 걸으며 성문을 체크하는 코스가 등산객들이 애호하는 등산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북한산 성문들을 모두 열었다던데.”

“언제 닫혀있었어?

 

처음엔 엄살을 부리며 꺼리다가 점차 장거리 산행에 재미를 붙인 친구 호근이가 그렇게 말을 꺼내며 13 성문 트레킹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길잡이가 되어달라는 거군.”

 

그렇게 네 번째 성문 사열에 나서게 된다. 북한산 모든 성문을 지나고자 함은 마치 내 집 열세 개의 방이나 거실을 열어 대가족 내 식구들의 안부를 점검하는 것과 같다. 그만한 큰집이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문을 여닫으며 포만감을 만끽하겠지만 네 식구 겨우 묵을 비좁은 방 나눠 쓰는 현실이기에 대신 북한산을 내 집 정원처럼 쓰기로 한다. 

수십 리 울타리에 문이 열세 개씩이나 되니 이보다 더 큰 집이 또 있으랴. 게다가 북한산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8 학군이요, 천상의 터전 아니겠는가.

대궐 같은 주택에 수많은 조경수 가꿔놓고 윤기 나도록 잔디 다듬어 놓았으나 담벼락 또한 너무 높아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바엔 하늘 바로 아래 온통 대자연의 웅장미 충만한 북한산을 분양받고자 오늘 13 성문 모델하우스를 꼼꼼히 살피려 한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살핌이 될 것이다.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용출봉, 의상봉 등 북한산의 내로라하는 봉우리들을 연결하여 쌓은 산성의 총길이가 10km에 달한다. 

북한산 능선 길 13.5km, 열두 개의 성문과 중성문을 되돌아오는 약 15km의 거리, 저 높은 태양이 뚝 떨어져 석양 노을 물들 때쯤 내려올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다만 우리도 북한산도, 서로를 사랑하므로 이 산, 눈길 벼랑이나 어둠으로 내몰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머물러 쉼이 곧가고자 함이니 

    

북한산성 탐방로에 들어서면 늘 직진 오름길인 백운대로 향했는데 오늘은 왼쪽 효자리 방향 북한산 둘레길인 내시 묘역 길로 틀어 13 성문 중 서암문(시구문)을 제일 먼저 통과하기로 한다.

 

“여길 들어서는 건 죽은 이가 부활하는 거나 다름없어.”

 

시신을 성 밖으로 내보내던 문이라 시구문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암문으로 통일해 서암문으로 고쳐 부른다.

 

“말 되네.”

 

그런데 그것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 북한산에는 유난히 많은 애국지사의 묘소가 있어 현충원을 방불케 한다. 신익희, 신하균 선생의 묘역을 비롯해 곳곳에 이준 열사, 김병로 선생, 광복군 합동 묘소, 이시영 선생, 이명룡 선생, 유림 선생, 김창숙 선생, 양일동 선생, 서상일 선생, 신숙 선생, 김도연 선생 등을 모신 묘소가 있는데 지금은 이들 묘소를 연결하여 순국선열 묘역 순례길이라고 명명하였다. 나라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애국 활동을 하다가 북한산 품에 안겼으니 그분들의 넋은 편안하리라 믿는다.

 

“호근이 너는 북한산에 들어서면 어떤 생각이 들지?”

“매번 똑같지. 땀깨나 흘리겠다는 생각.”

“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왔다니?”

“어디론가 떠났다가 되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져.”

 

산에 가면 그런 마음이 들곤 했는데 북한산에서는 특히 더 그러했다. 아침에 나갔다가 해지면 들어오는 가정처럼, 혹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모난 생각은 다 잊어버리게 되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거였다. 그 실체가 무언 지는 알 수 없지만, 산에 들어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느낌이 그득 드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돌아갈 때는?”

“그땐……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나는 기분이지. 떠나서 남아있는 이를 그리워하는…… 그런 기분.”

“북한산이랑 사랑에 빠진 거 맞네.”

“가끔 아내가 질투하기도 하더라고.”

“쉽게 이해되진 않지만 부럽단 생각도 드네.”

 

사는 세상이 공허하고 외로워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서암문을 통과한다. 암문暗門이란 적에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출입문 위에 문루를 세우지 않은 비밀 출입구로 성안에 필요한 병기나 식량을 운반하고 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할 때 사용하는 문이다. 

북한산성에는 여섯 개의 대문(대남문, 대동문, 대서문, 대성문, 북문, 중성문)과 일곱 개 암문(가사당암문, 보국문, 백운봉암문, 부왕동암문, 서암문, 용암문, 청수동암문)이 있고 수문水門 하나가 설치되어 총 열네 곳의 문이 있다. 

대서문과 서암문 사이의 계곡에 있는 수문은 북한산성 내 가장 낮은 곳에 있어 북한산의 모든 물이 이 수문으로 흘러나왔다. 지금은 계곡 옆 능선 위로 무너진 성벽이 남아있을 뿐 흔적을 찾기 어렵고 주변 바위에 수문 축성 당시로 추정되는 구멍들이 여러 군데 남아있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치던 서암문. 오늘 서암문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긴 여정이 시작되는 첫 디딤 장소인지라 각별히 새롭다.

 

“웰컴!”

 

서암문 위로 밝게 비치는 햇살이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것 같아 기분이 흡족하다. 원효봉 오름길에 내려다본 효자리도 마을 전체가 동면을 취하는 양 고요하고, 마을 뒤 노고산 역시 저 자신은 하얀 잔설 털어내지 못하면서 아랫마을을 푸근히 감싸 안고 있다. 

서암문부터 원효봉까지는 매우 가파르게 이어지는 돌계단 길이 대부분이다. 긴 여정 초반부터 숨 몰아쉬며 오르게 된다. 언제나 비어있는 듯 조용한 암자 원효암을 지나 커다란 암벽을 쇠 난간 붙들고 오른 전망 바위에서 숨을 고른다. 

산에 올라와 보는 또 다른 산,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겨울 대기의 신선함, 머리로도 느끼고 가슴으로도 지각되는 기운찬 에너지.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 나를 기다리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실체였는지도 모르겠다.

     

바람,

눈,

흔들리는 솔가지

성벽 저편 은빛 빙화

바위 아래 무수한 설엽

열셋의 영혼 일제히 깨어나니

검은 용 승천하듯 열정 넘쳐나고

잰걸음 내디딜 때마다 푸른 에너지 

무량하게 뿜어내네.

     

기자촌 재개발지역과 고양시 일대를 한눈에 담고 암벽을 내려서서 복원된 성곽을 따라 원효봉(해발 505m)에 다다르면 북한산 종가라 할 수 있는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이 나란히 서서 반긴다. 

그들은 상하 계급 관계가 확연해 보이다가도 무한한 우정을 나누는 지기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오늘 종주의 종착지인 의상능선이 눈앞에 쫙 펼쳐져 그 시원한 경관에 마음마저 정화된다. 여기서 마주하면 그리 멀지 않은 북한산 성문 종주 코스처럼 보이지만 거의 한나절을 소비해야 한다. 이제 다시 원효봉을 내려가 저들 봉우리와 만나고 산성 주능선과 의상능선을 돌며 문수봉, 용혈봉, 의상봉들과도 악수를 할 것이다.

 

“그대들 고고한 봉우리들이여! 우리에게 원효의 심오한 기상과 의상의 깨달음에 근접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원효봉에서 5분여 내려가 두 번째 북문을 빠져나간다. 북한산성 성문중 북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원효봉과 염초봉 사이 430m 지점에 있는데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 대서문과 중성문의 대문이 모두 복원되었으나 북문만은 누각이 불에 타 없어진 채 그대로 있어 암문 같은 형태로 남아있다. 

위험 구간으로 통제하기 전에는 원효봉에서 염초봉을 지나 곧바로 백운대로 오를 수 있었다. 성문 탐방이 아니더라도 북문을 거쳐 산성 길로 하산했다가 다시 오르는 길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700m를 내려와 왼쪽으로 꺾어 백운대로 오르는 1.5km는 내내 깔딱 고개 수준이다. 산과 친해질 만할 즈음 여기서 백운봉암문(위문)까지 올랐다가 아예 백운대는 쳐다보지도 않고 산과 담쌓은 이들이 많다는 곳이 바로 이 길이다. 그만큼 힘에 부치는 코스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서두름 접고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단전 깊이 새 공기 들이마시다가 다시 약수암에서 목이라도 축이고 가는 게 상책일 것 같다. 

머물러 쉼이 곧, 가고자 함이다. 산에서는 힘이 소모되기 전에 쉬어야 가고자 하는 곳까지 갈 수 있다. 거친 숨 몰아쉬면서도 지친 걸음 옮기는 데만 집착하다가는 볼 곳 보지 못하고 주는 것 받지 못하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 반 토막 산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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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의 곪은 상처를 보듬다 

 

북한산 정상 일대 아래로 길게 성곽이 이어졌다

 

백운대가 점점 가까이 보인다. 지은 죄가 커서일까. 백운대를 직벽 하단에서 바라보았을 땐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의 신이 인간들의 두루 짓거리를 살피는 것처럼 여겨져 오싹할 때가 있다. 계단을 올라 세 번째 성문인 백운봉암문에 이르니 오싹함도, 추위도 사라지고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해발 690m 지점에 있어 일본 강점기 때부터 위문으로 불려 왔던 이곳에 닿으면 갈림길에 대한 어떤 이가 떠오른다.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은 갈림길.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클라이머였고 히말라야 14좌 중 열한 번째인 낭가 파르트를 정복하고 하산하던 중 추락사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의 이야기다. 스물두 살 때인 1989년 6월, 위문까지 오른 그녀는 백운대 난간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인적이 없는 만경대로 간다. 

 

“암벽등반에 재미를 붙이면서 더 잘하고 싶어 졌어요.”

 

그렇게 만경대 바위 암벽을 탄 게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북한산 사령부에 해당하는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로 인해 삼각산이라고 칭하는데 이들 세 봉우리는 각각 워킹 산행, 암릉등반, 암벽등반인 클라이밍을 대표하는 명품 봉우리이기도 하다. 오늘 고미영처럼 워킹 금지구간인 만경대로 갈 수는 없다. 

 

“성문 탐방이지만 백운대는 올랐다가 가야겠지?”

“나야 대장을 따르는 게 일이지 뭐.”

“그래, 순응이 곧 안산 완주라네.”

 

최고봉 백운대白雲臺(해발 836m)까지 올라온 건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 앞에서 정상까지 올라왔음을 인증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인수봉(해발 810.5m)을 보고 싶어서였다. 눈이 녹아 더욱 창백해진 인수봉 거대한 직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심신에 묻은 티끌과 오염을 깨끗이 씻는 것처럼 상쾌하다. 오늘은 인수봉에도 클라이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깨끗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막 면도하고 세안을 마친 정갈한 모습이다.

 

“화강암 제형들! 올겨울은 유난히 추운데 잘들 버티고 계시지요?”

“몸뚱이 군데군데 동상이 걸려 부스럼이 일긴 했네만 그런대로 지낼만하다네.”

 

인수봉의 말을 받아 만경대가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준다.

 

“겨울 낭만에만 몰입하지 말고 조심 또 조심하게나. 곳곳에 얼음이 박혀있다네.” 

 

장형인 백운대가 세차게 부는 바람을 몰아내며 온화하게 미소 짓는다.

 

“제형들께서도 찾는 사람들 더욱 푸근히 감싸주시지요. 특히 인수봉 형님은 부스럼 치료하시고요. 부스럼 난 부위에 발 디뎠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저들이 있는 북한산은 언제 누구랑 오든 감동의 공간이다. 하지만 혼자와도 감동 넘치는 환희의 장소이긴 매한가지다. 홀로 산행에 익숙하고 그게 편하다고 느낀 어느 겨울에 처음으로 북한산 열두 성문을 종주했었다. 비록 혼자 산에 가더라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 북한산이다. 그런 북한산의 최고봉인 이곳 백운대에 숱하게 많은 쇠말뚝이 박혀있었다. 

 

“일제 치하 총독부가 우리 국토의 혈맥을 차단하려고 박았던 거지.”

“이게 바로 그 흔적이군.”

 

쇠말뚝을 빼낸 자리가 깊게 곪은 상처에서 고름을 빼낸 듯한 느낌이 든다.

 

“1995년에 광복 50주년을 맞아 여기 박혀있던 쇠말뚝들을 제거했다더군. 뽑은 쇠말뚝은 독립기념관 일제 침략 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지.”

“일제의 심리적 압박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게끔 하려는 거겠지?”

“상처 받은 민족 자존심도 회복시키고 말이야.”

 

풍수지리에 능한 이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백두산에서 북한산으로 뻗치는 맥을 끊어 한강의 기운까지 말살하려 했다고 분노하지만, 개인적 견해로는 우리 국민이 과학의 근거를 바탕으로 일제의 유치한 심리전을 뭉개버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고인다. 일본인들의 허접스러운 잔머리에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자연파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위안부에 대한 배상 문제부터 처리하자.”

“할 일이 많아졌어. 내려가자.” 

         

얼어 굳어 더욱 미끄러운 백운대 내리막

삭풍까지 모질게 할퀴고 

고름 빼낸 상처 얽어매어 몰골 고약해졌으나

명색이 수도권의 허파 삼각산인데

왜놈에게 찢긴 자존심만큼은

떨쳐내고 싶으리라 

독한 시련 견뎌내는 인고의 세월 보내었으니

이 겨울 지나거든 상처 아문 그 자리에 

한 송이 꽃 피어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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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주능선에는 그 어떤 차이도다름도 없다 

    

백운봉암문에서 용암문으로 빠지는 길은 좁고 가파른 편이어서 더 조심스럽다. 주말이나 휴일엔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로 인해 정체가 매우 심한 곳이다. 붉게 홍조 띤 등산객들의 얼굴에서 추위보다 행복한 포만감이 먼저 느껴진다.

네 번째 용암문에서 대동문으로 가는 산성 주능선 길도 비교적 한적하다. 용암문과 대동문 사이의 성터 회전 구간에서 쉬며 주봉을 향해 뻗은 북한산성의 장대한 이음에 탄성을 흘린다. 잇고 또 이어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에. 

 

돌아보니 노적봉을 중심으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가는 길을 배웅해준다

 

대동문까지의 산성 주능선은 언제 와도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생각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함께 걸으며 생각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 이 길을 함께 걸으면 그가 누구든 그의 동떨어진 사고까지 흡수하고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계속 얼빠진 생각만 할 건가? 그런 건 불가능한 일이야.”

 

동장대에 이르자 건장한 무장이 섣부른 공상에 일침을 가한다. 깜짝 놀라 문루를 올려다보곤 정신을 가다듬는다. 사회, 정치, 이데올로기…… 다시 생각해도 군중들의 섞임에서는 현실성이 요원한 일이다. 여기가 산이기에 비루한 존재한테도 포용의 큰 의미를 잠시 심어주었을 것이다.

장대將臺란 그 지역을 지키는 장군의 지휘소인데 용암문과 대동문 중간지역에 있는 동장대는 북한산성의 장대중 최고 지휘관이 사용하는 중책 지역이었다. 북장대와 남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여기 동장대만 남아있다. 

다섯 번째 대동문을 지나 보국문 가는 길 왼편의 칼바위 능선에는 오늘처럼 시린 날에도 등산객들이 여럿, 눈에 띈다. 수유리 화계사에서 한 시간 남짓 가파른 눈길을 올라와 맞는 칼바람은 참으로 시렸었다. 그래도 능선에 올라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노라면 북한산이 내 집처럼 훈훈하다는 의식이 절로 들곤 했었다. 

여섯 번째 보국문을 지나며 길게 늘어선 겨울 성곽에서 용의 등줄기를 본다. 용이란 동물은 본디 순해서 용의 몸 어딜 건드려도 건드린 이를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역린逆鱗, 용의 목에서 등 사이에 돋은 비늘을 건드리면 성을 참지 못해 그게 누구든 처참하게 죽인다고 한다. 

외침에 목숨 걸고 사수하려 늘어선 성곽, 신라와 백제의 피 튀는 전쟁과 역린을 엮어 생각하다가 써늘한 한기를 느끼고 만다. 참으로 별별 생각을 다 하게 하는 북한산 성문길이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산길은 살아온 삶처럼 회한에 젖어들게 할 때가 있다. 삶이 산과 다른 건 뿌듯한 성취감이 뒤돌아본 그곳에 반드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취가 사라진 행적은 얼마나 공허하고 슬픈가. 그런 허탈감과 슬픔을 많이 곱씹어봤기에 산에서 그걸 지우려 했는데 오히려 걸어온 길마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지는 것이다.

산과, 삶과 사람과……. 살아오면서 거듭되었던 기복, 그때마다 생겼던 사람들과의 갈등과 매듭에 대해 산은 어떻게 풀어야 현명한지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잊게 하고, 버리게 하고, 풀게끔 지혜를 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걸 사고하면서 걷게 되고, 걸으면서 하나씩 둘씩 정리시키고 있다. 

 

         

하산 즈음에 내리는 눈송이는 희열 그 자체이다  

   

일곱 번째 대성문의 지붕에 쌓였던 눈을 바람이 털어내고 있다. 조선 숙종 때 축성된 대성문은 형제봉 능선을 타고 평창동과 정릉으로 연결된다. 통로에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호근아! 넌 네가 아는 이들에게 네 문을 개방했다고 생각하니?”

“…….”

 

뜬금없는 질문에 호근이가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문을 연다고 상대가 문을 열고, 상대가 연다고 해서 내 문이 열리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역시 생뚱맞은 질문이다. 이쯤 오니 문門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들이 머리에 스미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오고 가고 또 여닫는 관문이기도 하지만 문이란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브레인스토밍 등 서로 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비유로 표현하기도 한다.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건, 남의 말에 더 귀 기울이라는 뜻이라고 했던가. 이기적인 게 기적이 되는 일 또한 하나만 버리면 가능하다고도 하지 않던가. 마음의 문을 열면 누구든 흡입할 수 있건만 쉬이 열리지 않다가 이해利害를 따져본 후에야 배꼼. 열리는 게 그 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문이란 게 상당히 복잡한 물건이네.”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 있는 대남문은 비봉능선을 통해 도심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라 한다. 지금은 북한산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대남문을 거치는데 바로 이곳을 거쳐 백운대로 가는 선성 주능선이나 그 반대편의 의상능선 혹은 비봉능선 등을 맘껏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남문이 거리상 성문 종주의 중간지점쯤 된다.

여덟 번째 대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문수봉으로 오른다. 이 성곽은 마치 어릴 적 막대기 들고 무심히 긁으며 걷던 동네 담벼락처럼 느껴진다. 문수봉 자락에 닿으면 누군가 나오기를 마냥 기다리는 어린아이 마음이 된다. 문수봉에서 보현봉을 바라보면 세상 가장 아늑한 곳이 여기란 느낌이 든다. 무한한 편안을 느끼며 현실에서는 취할 수 없는 풍요한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 자유인이 된다. 

 

“아직 갈길 많이 남았을 텐데 예까지 와서 덕담까지 해주니 훈훈해지는구먼.”

“대남문까지 왔다가 어찌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북한산 숱한 봉 중에서도 손에 꼽는 문수봉이신 데요.”

 

친숙한 문수봉을 들르지 않으면 서운해할 것 같아 잠시 들러 촛대바위 등 주변 일가들까지 쭉 둘러보니 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녹다 만 잔설이 희끗희끗한데 그들 미소는 여전히 따뜻하다.

 

“조만간 비봉능선 거쳐서 또 들르겠습니다.”

 

문수봉 아래 표고 694m에 자리한 청수동암문은 주로 삼천사나 진관사에서 올라와 의상봉을 2.5km, 비봉을 1.8km의 지척에 끼고 있어 북한산 명품 산행 코스의 기준점 중 한 곳이다. 아홉 번째 청수동암문에서 의상능선 방향의 내리막길이 무척 미끄럽다. 음지의 빙판이라 철제 난간이 설치되었지만 반대편에서 올라올 때보다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신발에 아이젠을 채운 잰걸음으로 열 번째 부왕동암문에 다다르자 어디든 기대고픈 생각이 든다. 눅진함과 나른함이 몰리긴 하지만 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금씩 눈발이 흩날리기도 하고 해 떨어지면 바로 어둠인지라. 

바스락, 바람에 뒹구는 낙엽 소리가 남은 세 개의 성문이 어서 오라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고개 돌려 좌측 비봉능선을 보고도 그냥 가려니 왠지 고모 댁에 들렀다가 인근 이모 집을 그냥 지나치는 기분이다. 비봉이 억지 미소를 짓기는 하지만 사모바위가 입을 삐죽거리는 것만 같다.

 

“약속함세. 계절 바뀌기 전에 다시 와 이모님께 인사드리고 사모바위 옆에서 식사하고 갈 걸세.” 

 

경사 심하고 미끄러운 의상능선, 해거름 노을 빛깔 붉힐 즈음 살얼음 박히는 바위에서도 소나무 푸름은 따라 물들지 않는다. 비스듬히 버텨 서서도 북풍한설 모진 세파 용케 견뎌낸다. 기운이 떨어질 무렵 그 빠진 힘을 채워주는 재충전의 산물이다.

 

“고맙네. 딱 맞춰 거기 그 자리에 있어 줘서.”

 

열한 번째 가사당암문에서 국녕사로 내려선다. 예로부터 신라의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곳으로 이름난 국녕사國寧寺이다. 이 절 뒤쪽의 봉우리를 의상봉이라 명명하였다.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한 13개 승영 사찰僧營寺刹 중 하나로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위치상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의 성벽과 그 중간에 자리한 가사당암문의 수비와 관리를 맡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국녕사에는 국녕대불, 즉 합장환희 여래불合掌歡喜如來佛이 있다. 불상이 합장한 양식은 우리나라의 기존 불상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지광이 중국 둔황석굴의 도상을 보고 재현했다고 한다. 총 24m, 80척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좌불상이다. 

국녕사에서 범용사에 이르러 중성문으로 가는 길은 가파름이 없는데도 무척 버겁다.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산 성문 탐방은 중성문을 뺀 열두 성문을 일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중성문에서 인증만 받고 돌아와 무량사에 이르렀을 때는 잿빛 하늘에 눈발이 굵어지고 있다. 이제 마지막 출구 대서문만 남았다. 대서문까지야 평지 아스팔트 내리막길 아닌가. 하산 즈음에 내리는 눈송이는 그야말로 희열 자체이다. 뿌리는 눈이 아름답게 보이니 피로감도 싹 사라지고 만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고 오른 게 아니다. 그랬으면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준비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이 세상 최고의 대자연에서 나 자신을 체험하고 싶었다. 거기 더해, 할 수만 있다면 에베레스트의 모든 장엄한 것들을 끌어안고 싶었다. 이런 일은 산소마스크의 기능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유토피아에서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금세기 최고의 산악인이라 일컫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이다. 열세 번째 대서문을 찍고 산성 입구까지 무사히 원점 회귀하자 유토피아를 체험한 뿌듯한 성취감이 몰려든다. 거기가 에베레스트이든 북한산이든 진정 너끈함을 안겨주는 유일무이한 곳은 역시 산뿐이다.

 

“호근아, 수고했어.”

“고마워, 같이 종주해줘서.” 

 

열세 개의 성문을 통과하면서 열세 번 묵상하며 스스로 다그치고 독려도 하였는데 한동안이나마 뇌리에 남아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희망해본다. 

 

대서문을 끝으로 13성문을 모두 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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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성문 지나며 열세 번 묵상하시라  

 

   

들머리 산성 입구에서 신발 끈 조여 매고 서암문으로 향하며 작금의 처절한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홀몸노인들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새옹지마의 대전환이 생기길 기도하시라. 

원효봉 올라 이마에 송송 맺힌 땀 훔치고 북문으로 내려가거든 살며 상처 주었던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상처 안겨준 이들을 진심으로 용서하시라. 

깔딱 고개 올라 백운봉암문에 이르러 내 가족의 평안을 기도하고 그들의 고마움을 묵상하시라. 숨 몰아쉬며 정상인 백운대까지 올랐으니 세상사 밝은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자신을 스스로 보듬어주시라.

이제 얼음길 조심스레 발 디디며 지금의 행보와 세상사 아름답게 내다볼 줄 아는 장년의 혜안을 새김 하고 용암문을 통과하시라.

산성의 긴 펼침이 마치 인생 같지 아니한가. 칼바위 왼편으로 늘어선 산성 주능선, 시작이 반이고 거의 반을 왔으니 널찍한 대동문에서는 함께하는 삶, 동반의 보폭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한번 서로를 칭찬하고 아낌없이 포옹하시라. 

용의 비늘을 만지며 걷다가 뒤돌아 걸어온 길 되새기며 잠시 숨 고르다가 보국문에서 삶의 재충전이 탄생만큼이나 귀한 계기라는 걸 자각하시라.

휘 둘러보니 세상이 발아래 펼쳐지지 않았던가. 대성문에서 묵연히 형제봉 바라보며 시종일관 겸허의 지혜를 되새기시라. 

보현봉과 문수봉이 은빛 웃음 지으며 어서 오라 손짓하나 그래도 비봉능선과 의상능선이 접하는 대남문에서 저 자신을 위해 묵도하고 스스로의 존재에 감사하시라. 최고봉 백운대와 맞먹을만한 존재감이 묵직하게 들어차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될지도. 

이제 더욱 신중하게 의상능선으로 들어서는 청수동암문을 지나게 될 것이니 여기서는 나를 아는 내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지그시 눈을 감아보시라. 저도 모르게 미소 번지며 벅찬 감회에 젖어들지 않던가. 

다시 버거운 오르막, 조심스러운 내리막을 거쳐 부왕동암문에 다다르거든 오늘 하루를 처음부터 회상해보시라. 지난 삶이 쏜살같듯 종일 걸은 산길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있을 것이니 산이 있어 감사함을 한껏 느끼시라. 

가사당암문 지나 국녕사의 합장한 국녕대불을 내려다보며 함께 걸어온 내 친구의 손을 잡아주시라. 수고했노라고 말은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눈빛으로 오늘의 감동을 흠뻑 느끼리니. 

산성마을 발아래 두고 막바지 내리막 조심스레 내디뎠다가 열두 번째 중성문 위로 물들기 시작하는 주황 노을빛에서 아무리 울적한 일 많은 삶일지라도 세상은 충분히 살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라. 

그리고…… 마지막 대성문에 이르기 전에 사랑했던 이들을 더욱 사랑하고, 그렇지 않았던 이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큰마음을 지니시라. 그곳 대성문에 닿거든 세상이 화답하는 커다란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니.

 

   

 

                 

때 /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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