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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출산 출렁다리

장한림 2022. 3. 2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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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아리랑의 본산 월출산국립공원의 출렁다리

 

주소 : 전남 영암군 영암읍 천황사로 280-43

 

https://www.youtube.com/watch?v=JyAO1L-mZBk&t=171s 


남도 들판 불꽃 바위들의 전시장, 월출산

 

 

간밤에도 여긴 휘영청 달이 밝았나 보다.

긴 겨울과 함께 뿌연 연무까지 밀어냈다.

부챗살처럼 은빛 햇살 뿜어내리니

나뭇가지마다 길게 뻗어 기지개 켠다.

봄 시샘 떨쳐내지 못한 작은 바람이

이따금 옷깃 파고들며 투정 부리긴 하지만

푸른 하늘빛 목화 구름 타고 늦었다 싶어

내처 달려 봄이 온다.

늘 있던 이, 저만치 두고 맞이하므로

시린 기운 짙게 남은 내 가슴에도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 승용차 두 대가 엇비슷하게 전남 영암에 닿는다. 횃불 산악회장인 태영이가 적극적으로 월악산행을 주선하여 노천, 호근, 남영, 영빈, 재성, 계원이까지 여덟 명이 차량 두 대를 나눠 타고 온 것이다.

 

“영암은 영암아리랑이랑 월출산이 있다는 정도 외엔 아는 게 없어.”

“이제부터 많이 알게 될 거야.” 

 

아침 식사를 위해 들어선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대뜸 꺼낸 첫마디가 월출산이다. 

 

“월출산 오신 거지요?”

 

이어서 계속되는 화두 역시 월출산이다.

 

“월출산 기를 받고 가면 한동안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하하!”

 

식당 주인이 직접 상차림을 하며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면서 호방하게 말을 잇는다. 

 

“화강암에서 뿜어내는 원적외선 때문이지요.”

 

그랬다.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남해와 부딪치면서 솟아오른 화강암, 뒤에 알게 되었지만 이렇게 형성된 화강암 복합체 월출산은 바위의 8할이 사람에게 이로운 원적외선을 내뿜는 맥반석이라 한다.

 

“영암과 월출산은 일체나 다름없지요.” 

 

월출산 자락에서 태어난 가야금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명인이 월출산 풍광을 열두 줄 선율에 담은 것을 비롯해 많은 예인이 월출산의 무쌍한 기백과 아름다움을 펜과 붓에 담았고, 노래로 표현했음을 사례까지 들어 설명해준다.

 

“월출산을 빼놓고 영암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겠군요.”

“아침 먹으면서 영암을 다 익힌 듯합니다. 하하하!”

 

구름다리의 축조로 편안하고 단축된 산행에 천황사의 내력까지 듣노라니 식당을 나오면서 산행을 마친 기분이 드는 거였다.

화승조천火昇朝天, 아침에 하늘로 타오르는 불꽃같은 산세라 하여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그렇게 표현했다. 식당을 나와 시계를 본다. 아직 만물이 생동하는 아침 시간이다. 화르르 타오르는 강한 불꽃의 원적외선 에너지를 충전하러 친구들과 함께 걸음을 서두른다.

 

 

달뜨는 수석전시장    

 

“경포대가 언제 이리 이사 왔지?”

 

월출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다. 산행 들머리로 잡은 금릉 경포대는 호수의 물이 거울처럼 맑아서 그 이름이 유래된 강릉의 경포대鏡浦臺와 달리 천을 넓게 펼친다는 의미의 포布 자를 쓴다. 

월출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무명베를 길게 늘어뜨린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으로 비가 자주 와서 풍년 들기를 소망하는 의미가 곁들여 있다. 그렇지 않아도 살짝 고도를 올려 너르고 반듯한 들판을 내려다보면 이곳은 풍요가 자리 잡은 땅이라는 걸 공감할 수 있다. 

금릉 경포대 계곡은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약 2km의 골짜기로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를 맑은 물이 굽이치며 곡류와 폭포수를 빚어내고 계곡 주변엔 동백꽃 군락지가 있어 곧 다시 와야만 할 곳처럼 느끼게 한다. 

급한 절벽을 이루는 기반 암석이 물리적 풍화작용으로 붕괴하여 경사면 아래쪽으로 흘러 쌓인 돌들을 애추崖錐라 하는데 군데군데 그런 곳을 보며 지나게 된다. 

도갑사 가는 장군봉 능선과 천황봉으로 가는 사자봉 능선의 갈림길인 바람재 삼거리에 오르자 아직 겨울의 끄트머리가 잔해처럼 남아있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영암아리랑의 노랫말처럼 월출산은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대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 바람재에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월출산의 기암 봉우리들을 둘러보니 그 위로 뜨는 보름달의 모습과 달빛으로 치장한 바위 도포의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호남의 소금강, 최남단의 산악 국립공원, 전라남도 기념물 3호라는 계급장이 조금도 무색하지 않다.   

  

월출산 구정봉이 창검을 들고

허공을 찌를 듯이 늘어섰는데

천탑도 움직인다 어인 일인고

아니나 다를세라 달이 오르네   

  

노산 이은상 선생은 구정봉의 수많은 기암괴석을 창검과 천탑에 비유하여 바위 박물관이라 일컬으며 달과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는 월출산을 4 행시로 생생하게 표현한 바 있다. 

무수한 격전을 치른 노련한 장군의 형상, 구정봉을 머리에 얹은 장군바위가 많은 기암 중에서도 유독 튀는 모습이다. 

마주한 곳을 묵묵하게 혹은 감회에 젖은 모습으로 주시하는 장군의 얼굴에 주름이 짙고 턱밑 수염은 더부룩하다. 아직 찬바람이 채 물러나지 않은 능선, 입김 서려 눈꽃 밭이 된 바람재는 봄에 땅문서를 내주고 잠시 더부살이하는 막바지 겨울의 모습이다.

장군바위는 수많은 전쟁을 치룬 백전노장의 형상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얻어낼 게 있다면 오직 평화뿐이다.”

 

난을 평정한 백전노장은 승리의 노획물로 봄을 쟁취했고 긴 싸움으로 허기진 백성들에게 그 보상으로 봄기운이 전해지는 것을 보며 굵은 주름을 편다. 맑은 하늘과 생동하는 대지의 기운이 금방이라도 동백나무 꽃잎을 붉게 물들여 승리를 자축할 기세다. 

너무 들떠서였나 보다. 승리의 기운 듬뿍 내뿜는 바윗길을 오르니 걸음걸음 영전榮轉의 칙령을 받으러 가는 것만 같다. 희끗희끗한 눈꽃과 황토색 풀밭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겨울과 봄이 마치 이념 극명한 두 집단으로 맞대치하니 금세라도 진격 나팔이 들릴 것만 같다. 

그러나 일촉즉발의 긴장감도 잠시, 어디선가 자지러지듯 새 울음 들리고 간간이 푸릇한 떡잎이 양기 받으며 세상 밖으로 모습 드러내는 걸 보면 겨울은 패배를 시인하고 봄으로 흡수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바로 이어 구정봉 바로 아래로 베틀굴이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 굴에 숨어 베를 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0여 m 깊이의 굴속에는 항상 음수陰水가 고여 있어 음굴 또는 음혈이라고도 부른다. 

굴 안의 모습이 여성의 국부와 흡사한 형상이라 그렇게 빗댄 것인데 농익은 사족이라고나 할까. 팻말에 적힌 베틀굴에 대한 보완설명이 재미있다.

 

‘이 굴은 천왕봉 쪽에 있는 남근석을 향하고 있는데, 이 기묘한 자연의 조화가 월출산의 신비를 더해주고 있다.’ 

 

     

영암과 월출산은 하나 

    

구정봉九井峰 정상(해발 711m)에는 명칭 그대로 아홉 개의 물웅덩이가 파여 있다. 

구정봉에서 이 산의 최고봉 천황봉을 바라보노라면 수많은 고깔이 줄지어 섰는데 어찌나 옹골차고 역동적인지 고깔 하나가 쓰러지면 도미노 현상으로 줄줄 넘어져 최고봉까지 기울게 할 듯하다. 이렇게 능선에 늘어선 봉우리들이 광활한 들판과 아랫마을 영암을 끌어안고 있다. 

 

“정말 멋지군.”

“도봉산 못지않아.”

 

월출산을 처음 접하는 친구들의 탄성이 이어진다. 처음 오거나 두 번, 세 번 왔었거나 어느 계절이든 대할 때마다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여기 구정봉에 세 개의 흔들바위가 있었는데, 바위들이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그중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니 신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령한靈 바위巖가 그대로 지명이 되었단다. 더더욱 영암 어디에서나 월출산이 보인다고 하니 영암과 월출산은 하나라고 하는 말이 실감 난다. 

봄볕 보드라운 바위섬 산정에 올라 저 논밭 물결에 넋 놓고 눈길 담그는데 바람 한 점 요염한 미소 머금고 다가와 나른한 몸을 다감하게 끌어안는다. 피부를 스치는 것마다 아찔한 스킨십이다.

 

“이 산에 남생이도 산다지?”

“남생이라면 토종 거북이?”

 

청정한 산간 계곡 상류의 물과 육지를 두루 생활 터전으로 하는 토종 민물 거북이인 남생이는 보신을 위한 포획과 서식지 파괴로 그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천연기념물 제453호로 지정되었는데 월출산에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발견해도 잡지 마라.”

 

다시 바람재 삼거리를 지나 천황봉을 향해 줄지어 늘어선 고깔들 무리에 섞인다. 이런 곳에 어찌 이런 산이 있을 수 있는가. 논밭 위로 우뚝 솟았다는 것만도 기특한데 어쩜 이처럼 수두룩 기암 묘석만으로 꾸며질 수 있단 말인가. 

탁 트인 능선, 두루두루 눈길 바쁘게 하는 조망. 달이 뜨는 남도의 명산이란 칭송만으로는 그 표현이 턱없이 모자라다. 멀리 외따로 있어 자주 찾지 못해 안타까우면 닮은꼴 도봉산에 올라 그 안타까움 달래야 할까 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가던 중 월출산을 보고 시 한 수를 읊는다. 

    

누리령 산봉우리 바위가 우뚝우뚝 樓犁嶺上石漸漸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있다 長得行人淚灑沾 

월남으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마소 莫向月南瞻月出

봉우리들이 어찌 저리 한양 도봉 같은고 峰峰都似道峯尖   

   

능선 멀리서나 가까이에서나 볼 때마다 천황봉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다. 역시 화창한 주말의 도봉산 신선대를 연상시킨다.

반대편에서 오는 산객들로 서로 교차하는 구간에 이를 즈음 베틀굴이 향하고 있다는 남근석이 보인다. 우람하고 꼿꼿하다. 이 바위를 올려다보노라니 묘한 기분이 든다. 시선을 멈추는 다른 남성들의 기분은 우쭐할지 어떨지 머리를 긁적이는데 여성 등산객들이 그 설명 팻말을 본다.

 

“우리나라 산엔 남근바위가 너무 많아.”

 

팽팽하게 솟은 남근바위와 팻말을 번갈아 살피던 여성 등산객이 툭 내뱉자 그 일행이 묻는다.

 

“왜 싫어?”

“싫진 않지만, 너무 왜곡되고 과장됐단 거지, 내 말은.”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솔직 담백한 대화를 우연히 엿듣다가 친구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흘린다.

 

“헐~” 

 

저만치 가다가 힐끔 뒤돌아보고는 노천이가 수긍한다.

 

“맞아. 좀 왜곡되긴 했어.”

 

안개가 깔리지 않아 무척 다행이다. 준엄한 서릿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칼바위들의 윤곽이 햇빛을 받아 다감한 느낌을 주었기에 더 그렇다. 

해발 809m. 천황봉은 그 실제 높이보다 훨씬 높다. 바닷가에 위치해서 들머리부터 고도를 형성하지 않는 탓이다. 설악산 오색 들머리가 해발 500m이고, 정상 높이 1577m의 계방산은 그 들머리인 운두령이 해발 1089m에 있었으니 산을 높이만으로 가늠하는 건 사람 세상에서 금수저와 동수저를 평생의 우열로 결론짓는 것과 다른 바 없을 것이다.

식당도 아닌 절정을 조망하게 해주는 산정에서 수저를 꺼내 드는 건 상식을 벗어난 행위이다. 여기는 입보다 눈이 움직여야 하는 곳. 봄볕 보드라운 바위섬 산정에서 아래로 넓게 펼쳐진 논밭 물결에 눈길만 주어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천황봉은 안기는 이들 모두를 푸근히 감싸 안는 중이다

 

잘 정돈된 전답이 마을 전경과 함께 평화로운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안개가 걷힌 덕분이다. 산정에서 숨 고르고 온 사방을 둘러보노라니 불현듯 극복한 후엔 환난도 절망도 오로지 지난 일에 불과하단 생각이 든다. 고산 윤선도 역시 안개에 가린 천황봉을 극복한 삶의 가치를 높이 사서 그렇게 노래한 건 아니었을까.  

   

월출산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제일봉을 일시에 가려도

햇빛이 나면 안개가 아니 걷히랴  

   

구정봉에서와 달리 이곳에서 보면 저들은 고깔이 아니라 저마다 나름의 영웅담 하나씩은 지녔음 직한 기암 묘봉들이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월출산 꼭대기에서 빛을 내뿜자 도열한 바위 봉우리들이 일제히 기립한다. 

뾰족한 투구마다 섬광이 인다. 봉우리들 뒤로 저만치서 향로봉과 구정봉이 의젓하게 뒷짐 지고 있다.

어둠 뿌려 이곳 찾은 이들 모두 내려가도 월출산엔 정적 대신 장엄한 점호가 이뤄질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저들끼리의 정립된 시스템이 있으므로 해서 수많은 화강암 봉우리 간에 정연한 질서가 생성되었을 것만 같다. 그처럼 월출산은 많은 걸 보여주고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월출산은 끝까지 보여줄 걸 다 보여준다   

  

“다시 오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야.”

“좋아하는 사람과 꼭 오고 싶은 곳이지.”

 

구름다리로 하산하는 길에서 올려다본 천황봉은 여전히 또 다른 산객들로 붐빈다. 그들의 탄성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산에서 온 길을 뒤 돌아보면 불교의 법화경에서 말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만남은 헤어짐으로 이어지고 그 헤어짐은 다시 만남으로 회귀한다고 하던가. 

‘님의 침묵’에서 만해 한용운은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듯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고 거자필반이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내 주변 사람이 소중하면 변함없이 오래 머물기를 소망하며 멀어지더라도 재회를 바라는 것처럼 산도 정겹고 아름다우면 반드시 다시 찾아지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가 보다. 언제든 기회 닿는 대로 자주 찾고 싶은 월출산이다.

 

“이쪽 내리막은 완연한 봄일세.”

 

양지바른 하산 길은 눈꽃이 희끗희끗 남아있던 바람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운무에 젖고 눈서리 시리던 비탈에 봄볕이 드는 중이다. 참 고운 봄빛이다. 아침부터 축축하다 때맞춰 걷어진 구름, 동시에 드러난 햇살. 춘삼월 바위 골짝 해빙 중에 피어나는 봄이라 더 곱고 더 아련하다.

머잖아 고사할 것처럼 보이는 갈참나무, 그대로 바위 될 것처럼 들러붙은 고드름들이 지난 만추에 떨어져 이리저리 뒹굴던 수북한 낙엽을 적시며 겨울 녹아내리니 남도 월출산에서 시작되는 봄은 질척한 얼굴 내밀면서도 상큼하게 미소 짓고 있다.

바위 사이 봄 오는 길과 함께 회백색 봉우리들 사이로 빨간 구름다리가 보인다. 서너 시간 걸리던 매봉과 사자봉을 5분 거리도 채 안 되게 단축한 이 다리는 해발 510m, 지상 높이 120m에 길이 54m로 20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월출산은 끝까지 보여줄 걸 다 보여준다. 구름다리에서 보는 6 형제봉 등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처럼 견고 부동한 주변 경관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많은 사람이 여길 포토존으로 활용하여 기념 촬영하는 걸 보니 길이 막히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쉽게 걸음을 뗄 수가 없구나.”

 

만만치 않은 산행의 막바지이거늘 태영이 말처럼 쉬이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역시 멋진 모습은 산이건 사람이건 자꾸 훔쳐보게 되고 떨어지기 싫은 건가 보다. 건너기 전에도 그랬듯 건너서도 구름다리를 등지고 싶지 않은 건 죄다 뚜렷한 아름다움을 지녔기 때문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건립했다는 천황 사지를 지나고 대나무 숲 길을 빠져나오면 월출산은 다시 저만치 별천지에 우뚝 솟아있다. 

 

“다시 올 때는 꼭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와야지.”

“집사람 무릎이 좋지 않다면서?”

“내가 집사람이라고 했나?”

 

노천이 말에 호근이가 되묻고 다시 우문현답처럼 이어지는 대화에 웃음 지으며 대나무 숲에 이른다.

저 아래 국토 남단이지만 거기에 가면 월출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내려와 푸름을 느끼게 하는 대나무 숲이 있다는 것도 덤이 아니라 커다란 베풂이다. 월출산은 그 아래로도 자연 속에서 역사와 예술을 이어간다. 

남도 땅에서 달이 가장 예쁘게 뜬다는 구림마을, 삼한 시대부터 무려 2200년 동안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에 통일신라 때 생긴 영암이라는 지명보다 오래된 영암 구림마을이다.

최 씨 성을 가진 처녀가 빨래하다 물길에 떠내려온 오이를 먹고 아이를 가졌다. 이를 부끄럽게 여겨 아이가 태어나자 숲 속 바위에 버렸는데, 사흘 후 찾아가 보니 비둘기들이 보호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바로 도선국사다. 그래서 비둘기를 뜻하는 구鳩와 수풀 림林을 써서 구림마을이 되었다.

고려 태조의 탄생을 예언한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뿐 아니라 삼국시대 일본에 학문을 전파하고 일본 왕의 스승이 된 왕인박사도 구림마을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영암 도기 문화의 근간인 구림리와 인근 상월리, 월하리의 도자기 문화도 월출산의 흙과 나무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전승시켜올 수 있었을 것이다. 

영암과 월출산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대자연의 조화로움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감상한 느낌이다. 

베토벤의 운명과 쇼팽의 이별곡을 번갈아 들으며 위대한 두 음악에서 추상적이지만 대단히 조화로운 공감을 얻은 것처럼. 자연이 얼마나 세상을 위대하고 장엄하게 꾸며놓았는지를 구정봉에서 보았고, 천황봉에서 확인하였으며 사자봉에서 또한 느꼈으니 말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영암 깜깜이가 지금은 영암 박사가 된 기분일세.”

“산행에 역사, 지리, 자연까지 두루 익혔으니 값진 기행을 한 셈이지.”

 

아직 일렁이는 여운을 담고 우리나라 도자 역사에 있어 특별한 유적지인 마을 내 영암 도기박물관에서 다양한 도예작품을 관람하며 영암 기행을 쉬이 마치지 못한다. 

 

                    

때 / 초봄

곳 / 금릉 경포대 - 바람재 삼거리 - 베틀굴 - 구정봉 - 바람재 - 천왕봉 - 사자봉 - 구름다리 - 천황사 야영장 - 영암 구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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