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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인 홍도 깃대봉
전망대를 지나면서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니
그제야 산에 온 기분이 든다. 2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면
바다는 더욱 고요하고 물속 깊이 홍도의 그림자를 담아
고즈넉한 맛을 더한다.
가고자 마음을 먹고도 쉽사리 다녀올 수 없는 곳 중의 한 곳이 홍도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라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섬 산행의 묘미에 빠질 즈음 겨우 친구와 시간을 맞추었다.
목포 유달산에 올랐다가 시간 맞춰 내려와 목포 여객선터미널로 왔다.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한 쾌속정이 비금도를 거쳐 망망대해로 접어들자 살짝 어지러워지려 한다.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홍도 연안에 도착해서야 처녀 방문지 홍도를 실감하게 된다.
목포에서 서쪽으로 약 107km 떨어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를 행정구역으로 하는 홍도紅島는 20여 개의 부속 섬이 있고 해 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 명명한 섬으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22개 국립공원 중 1981년에 1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구역은 전라남도 신안군 홍도에서 여수시 돌산면에 이르며 면적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가장 넓다. 이름에 걸맞게 국립공원 내에만 400여 개나 되는 섬이 있다.
섬 전체가 200m 내외의 급경사 산지로 이루어진 홍도는 섬 내에 깃대봉(367.8m)과 남서쪽으로 양산봉(231m)이 솟아있는데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명승지이며, 홍도 천연 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70호)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문, 실금리굴,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 여, 부부탑, 독립문바위, 거북바위, 모녀상 등 홍도 10경이 주요 관광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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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어에 만선을 기원하며 쌓은 청어미륵
홍도항 등대와 깃대봉 오르는 길에 설치된 긴 데크를 보며 홍도항에서 걸음을 뗀다. 홍도를 떠나려는 많은 이들까지 속속 연안 여객선 터미널로 모여들어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예약한 숙소에서 간단히 산에 오를 차림만 갖춰 깃대봉 들머리로 향한다. 시간상 내일 아침에 유람선으로 바다 구경을 하고 곧바로 섬을 떠나야 하므로 도착 당일 서두를 수밖에 없다.
함께 승선했던 몇몇 탐방객들과 같이 들머리로 향한다. 흑산초등학교 홍도 분교 정문에서 오른쪽 오르막길을 따라 느긋한 마음으로 걷는다. 내연발전소로 가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향하면 깃대봉 정상 방향이다. 홍도항을 발아래 두고 첫 번째 전망대까지 긴 데크 계단을 오른다.
남문바위와 반대쪽의 도담 바위 등 보이는 돌섬들이 하나같이 물 위에 뜬 기암절벽이다. 홍도 분교의 오른쪽 해안에 있는 방파제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라고 한다. 오늘 여기서 홍도의 낙조를 감상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날씨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홍도항과 홍도 1구 마을의 붉은 지붕들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홍도는 여객선이 드나드는 홍도 1구와 30여 가구가 거주하는 2구의 두 마을이 있다. 홍도 2구에는 여객선이 닿지 않고 어선으로 이동한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니 그제야 산에 온 기분이 든다. 2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면 바다는 더욱 고요하고 물속 깊이 홍도의 그림자를 담아 고즈넉한 맛을 더한다.
다시 오르자 매끈한 돌 두 개가 세워진 곳에 울타리를 쳐놓았다. 청어靑魚미륵 또는 죽항竹項미륵이라고 이름 붙여진 돌이다.
과거 홍도 주변 어장이 매년 청어 파시로 문전성시를 이룰 때 홍도 어민들의 배에 청어는 들지 않고 둥근 돌만 그물에 걸려들어 매번 바다에 던져버리곤 하였다.
“그 돌을 버리지 말고 이 섬 높은 곳 전망 좋은 자리에 모셔놓으면 일이 술술 풀릴 것이다.”
어느 날 한 어민의 꿈에 그물에 걸린 돌을 전망 좋은 곳에 모셔다 놓으면 풍어가 든다고 하여 그 계시대로 하니 그 후부터 만선이 되었다고 한다.
홍도의 고기잡이 선주들이 그 돌의 영험함을 믿고 청어 미륵이라 부르게 되었다. 미륵불 형상을 한 돌은 아니지만, 어장에 나가기 전 이 돌 앞에서 풍어를 빌었다고 한다.
홍도 주민들의 소박한 민간신앙을 엿보고 다시 숲길을 걸어 오르다가 연리지를 보게 되고 숨골재라 적힌 굴에 이른다. 이곳 주민 중 한 사람이 절굿공이로 쓸 나무를 베다 실수로 이 굴에 빠뜨렸는데 다음날 고기잡이를 하러 바다에 나갔더니 어제 빠뜨린 나무가 떠 있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바다 밑으로 뚫린 굴이라 하여 숨골재 굴이라 부르다가 숨골재로 굳어져 불려 왔다. 지금은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주민들이 굴 일부를 나무와 흙으로 메운 상태라고 한다.
탑 쌓다가 놓친 신혼의 아내
동백숲 길과 숯가마 터를 지나 깃대봉(해발 365m)에 올랐다. 홍도 분교에서 걸음 멈춰 눈길 머물며 올라왔어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홍도의 곳곳을 내려 보다가 탑상塔像골이 있는 방향을 가늠해본다.
탑상골은 해수욕장으로 쓰이는 뒷대목에서 석촌리 쪽 중간 길목에 있는 계곡이다. 이곳의 암벽은 약 15m 높이의 탑을 쌓아 올린 것처럼 생겼는데 이 탑의 건너 북쪽 절벽을 여탑女塔이라 하며 이 계곡을 서방여골이라고 부른다. 이 여탑과 남탑男塔이 있는 탑상골 사이에는 40m 높이의 산이 가로막아 배를 타고 가야 한다.
홍도가 무인도였던 오래전, 대흑산도에 사는 청년이 풍랑을 만나 홍도까지 표류해왔다. 청년은 이 섬 앞으로 지나가는 배가 잘 볼 수 있도록 탑을 쌓아 올리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 청년이 탑을 쌓으며 지내던 탑상골 건너에는 중국에서 이곳을 지나다 파선한 배에 타고 있던 아름다운 처녀가 표류해 살고 있었다. 처녀는 이 섬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자기 옷을 벗어 깃대를 만들어 세워놓고 지나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탑을 쌓다가 행여 배가 지나가나 싶어 대흑산도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으로 나갔다가 깃대봉에서 이 처녀를 발견하였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내가 탑을 다 쌓은 후에 살림을 차립시다.”
남편은 신혼의 아내와 떨어져 살며 오로지 탑 쌓는 일에만 매진했다.
“혼자 있을 때만도 못하네.”
외딴섬에 표류해 외롭고 지루한 날을 보내다가 신랑을 얻은 여인은 결혼 전보다 더 외로워졌다. 여인은 남편이 있는 탑바위로 건널 수 있는 암초를 발견하고 그 암초를 딛고 뛰려다가 미끄러져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 여인이 밟았다가 미끄러진 암초를 홍도 주민들은 ‘서방여嶼’라 부르고 여인이 자리를 잡고 있던 곳을 서방여골이라 명명하였다. 또 여인의 옷을 벗어 깃대를 만들어 세운 봉우리, 바로 지금 이 자리가 깃대봉이다.
“조금만 더 기다렸어야지.”
탑을 모두 쌓은 남편은 뒤늦게 신혼의 아내가 죽은 것을 알고 대흑산도가 보이는 깃대봉 너머 ‘슬픈여’ 앞에 와 울었다 하여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저기 보이는 섬이 흑산도지? 멀지도 않은 섬에서 오도 가지도 못하고 아내까지 잃었으니 속이 사무칠 만도 하겠어.”
“흑산도 하면 뭐가 생각나나?”
“흑산도 하면 흑산도 아가씨와 홍어삼합 아닌가?”
정상석 뒤로 흑산도가 보이기에 물어봤는데 단순 명료한 윤호의 답변이 재미있어 대화가 이어진다.
“윤호야, 최익현에 대해서는 잘 아나?”
“잘 알고말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인물이지.”
“…….”
기가 막힌다. 배우 이름도 아니고 영화에서의 역할 인물 이름을 기억한다는 게.
“너랑 함께 홍도에 온 게 갑자기 자랑스러워진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조선 고종 때의 문인이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였던 면암 최익현에 앞서 최민식이 연기한 인물을 떠올린 친구가 기특하기만 하다.
대원군의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가 제주도로 귀양 간 최익현은 풀려난 즉시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는 또다시 흑산도로 유배된다. 궁궐 앞에 자리를 펴고 도끼를 지닌 채 상소를 올렸다 하여 역사는 이를 지부상소持斧上訴라 하였다.
그는 이 도끼로 당장 일본 사신들의 목을 치고 나라의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하, 지금 면암이 소흑산도에 있으니 그보다 더 먼 흑산도로 보내버리시지요. 흑산도에 있으면 소흑산도로 나오는 데 하루가 걸리니 더 안심되지 않겠습니까.”
“오호, 중전! 좋은 생각이요.”
면암 최익현을 멀리 우이도(소흑산도)로 유배 보낸 조선 정부는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대규모 수신사를 일본에 파견하고자 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고종이 최익현을 염두에 두며 염려하자 명성황후가 묘책을 낸 것이다.
그렇게 면암이 유배되었던 흑산도에는 그의 유허비가 있고 그가 썼던 글들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해 호남지방에서 의병을 궐기하여 일본군과 교전하였다가 대마도에 유배되어서도 단식을 하는 등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던 면암은 1906년 그예 숨을 거두었다. 그가 지은 시 ‘우이牛耳에 올라 즉시 부름’을 되뇌노라면 조선 전기 최만리와 함께 최 씨 고집의 아이콘인 그의 형형하게 빛났을 눈빛이 느껴진다.
우이 한 봉우리 구름에 닿았으니 一峯牛耳接雲高
오르고 올라도 이 몸 피로 잊었네 登陟渾忘氣力勞
아름다와라 저 바다의 수없는 섬들이며 可愛層溟多少嶼
파도야 치든말든 저 홀로 천년 만년 萬年壁立敵洪濤
“그 최익현하고는 많이 다른 인물이구나.”
기록에 의하면 흑산도에 처음 유배된 이는 1148년 고려 의종 때 정수개라는 인물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약 76차례 흑산도 유배가 확인되는데 이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서 세 번째로 자주 이용된 셈이다.
섬의 규모를 고려하면 흑산도에 가장 많이 유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앙의 학식이 높은 덕망 있는 인사들이 흑산도에 유배되어 섬 주민들과 동화되어 살아감으로써 지역 문화 수준을 향상했고, 결과적으로 흑산도는 높은 수준의 전통문화를 간직하게 되었다.
흑산도에서 가까이 시선을 당기면 독립문바위와 띠섬, 그 우측으로 탑섬이 물에 뜬 바위처럼 자그마하다.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가거도가 있다는데 오늘 날씨로는 희미하게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다시 내려와 몽돌 해안을 걸어보고 방파제에서 일몰도 구경하다 보니 섬은 바다와 함께 금세 어둠에 묻히고 불빛 반짝이는 상업지역의 홍도에도 푹 젖어본다.
때 / 늦봄
곳 / 홍도 여객선터미널 - 홍도 분교 - 제1 전망대 - 제2 전망대 - 숨골재 - 숯가마 터 - 깃대봉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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