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룡산에서 내려와 조무락골에서 삼복더위를 무장해제시키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경계한 석룡산石龍山은 가평읍에서 약 30km의 거리상에 위치해 있는데 산세도 웅장하거니와 폭포, 담, 소가 이어져 시종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내릴 수 있다. 여름 산행에 적격지로 평가받아 등산객과 피서객이 지속해서 늘고 있다. 이번 여름의 석룡산은 며칠간 내린 호우로 물이 불어 계곡의 참맛을 만끽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새들 지저귀고 호랑이 엎드린 계곡을 질러가다
이번 여름 고교 동창들의 여름 산행지로 석룡산을 잡았는데 주된 목적지는 산 아래의 조무락골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동창들의 다수가 산행보다는 물놀이 피크닉에 치중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이 산행이든 물놀이든 상관없이 버스는 가평군 적목리 38교를 종점으로 한다. 적목리 용수목 75번 도로상의 38교에는 많은 관광버스가 멈춰 섰거나 차를 돌리느라 부산하기 이를 데 없다. 38교에서 둘러보면 사방천지가 첩첩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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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교에서 바로 계곡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새들이 늘 조잘거린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조무락鳥舞樂골이다. 경기 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경기도 내 여름에 가볼 만한 ‘숲과 물의 만남 계곡 5선’의 한 곳인 석룡산 조무락골은 6㎞에 걸쳐 계곡이 펼쳐져 있어 이맘때면 많은 피서객이 몰린다. 1976년 화전민 정리사업 이전에 67가구가 이 골짜기에 살고 있었다니 석룡산은 인근 주민들이나 알법한 오지의 산이었다.
38교에서 전원주택단지를 지나고 좁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마지막 농가인 조무락 산장이 보인다. 38 교부터 약 1.8km 걸어와 여기서 동창들이 두 갈래로 나뉜다. 30여 명이 조무락 계곡 물가에 자리를 잡고 나머지 여섯 명이 석룡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여섯 명만 계곡을 벗어나 신선이 되고자 산을 오른다. 물이 불어났어도 철철 넘쳐흐르는 계류는 수정처럼 맑다.
“계곡의 정화능력만큼 사람들도 흐린 뒤끝을 빨리 풀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왜 누가 뒤끝이 길어?”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아서 말이야.”
“그래? 그렇다면 너한테도 원인제공 요소가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
두 친구의 대화를 들으면서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인 남명 조식이 한 표현을 떠올리게 된다.
‘간수 간산看水看山 간인 간세看人看世’
‘남명집’에서 그는 물을 보고 산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고 표현하였다. 계곡의 물 흐름을 보면서 결국 자신의 허물까지 인식한다. 자연은 배움의 터전이며 인간 정신문화의 산실임을 역설한 남명의 표현이 적절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바로 사리를 판단하는 너야말로 계곡 못지않은 정화능력을 지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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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여섯 명이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으며 계곡을 따라 걷다가 점차 고도를 높이게 된다. 안내도에 표시된 1코스는 계곡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직진 길이고, 왼쪽 3코스는 능선으로 올라서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3코스 능선으로 올랐다가 1코스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서너 시간은 지나야 동창들과 합류하게 될 것이다. 가끔 잣나무 군락지가 보이지만 대부분 참나무 숲 길이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화악산이 보이기도 한다.
“당귀에 곰취까지 있네.”
잡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좁은 길에서 산나물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가 흔치 않은 곰취를 발견했다.
“산삼도 있을 거야. 잘 살피면서 걸어.”
대체로 조망은 가려졌지만 그늘진 숲길을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석룡산의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대개 육산이다.
마지막 농가에서 정상까지 약 두 시간이 걸렸다. 석룡산 정상(해발 1147m)은 참나무 숲으로 우거져 휴전선 인근의 대성산과 백암산을 볼 수 없다. 산정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므로 석룡산石龍山이라고 이름 지었다는데 그게 어떤 건지 알 수가 없다. 함께 올라온 신선들과 간단히 요기하고 바로 하산하기로 한다.
“신선이면 내려갈 땐 구름이라도 타고 가야 하는 거 아냐?”
“빨리 내려가서 속인으로 살고 싶지?”
능선을 타고 방림 고개를 거쳐 단풍나무 숲을 따라 내려간다. 정상 아래에서 골고루 둘러보니 경기도의 알프스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경기도 마지막 비경 지대이자 천혜의 자연림과 빼어난 경관으로 환경청에서 청정지구로 고시한 지역답다. 여긴 개발이란 미명으로 문명의 이기가 침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무락골 합수 지점 바로 밑에 화악산 중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전형적인 계곡 길답게 돌이 많이 깔려있고 축축하게 젖었다.
화악산 겨울 산행 때 중봉에서 내려와 이길 조무락골로 하산했었다. 그때 얼어붙어 고요하게 정적이 일던 계곡이 지금은 물소리,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나뭇잎의 움직임 등 음향까지 동반한 동적 흐름을 보여준다.
합수 지점에서 더 내려가 화악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호랑이가 엎드린 형상이라는 복호동폭포伏虎洞瀑布에 이른다. 20m 높이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중턱에서 꺾여 변화 심하게 쏟아져 내린다. 얼음물처럼 시원한 폭포수에 흘린 땀을 씻어내니 고진감래의 달콤함을 맛본다.
“호랑이는 못 찾겠는걸.”
숨은 그림 찾듯 꿰맞춰 보면 호랑이인지 스라소니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계곡을 따라 걷자 가평천 최상류의 계곡답게 연이어 맑고 시원한 담과 소가 펼쳐진다. 여름 산행의 뒤끝을 말끔하게 마무리해주는 곳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지막 농가 가까이 이르러 동창들과 합류한다.
“시원하다. 이제 살 것 같네.”
“이게 여름 산행의 백미 아니겠나.”
티셔츠를 벗어젖히고 물에 뛰어들자 산정에 머물렀던 신선의 의지는 금세 동심으로 바뀌고 동시에 속인과 혼탕을 하게 된다. 석룡산은 숲길과 계곡 트레킹을 겸하는 여름 산행지로 적격이라는 평가에 고개를 끄덕인다. 맑고도 찬 계류에 흘린 땀을 씻어내니 심신이 편안해진다.
“고된 신선보다 안락한 속인으로 사는 게 훨씬 행복하지 않겠어?”
“배고픈 신선이냐, 배부른 돼지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고민하게끔 만드는 질문이다.
때 / 여름
곳 / 적목리 용수목 38교 - 조무락골 - 마지막 농가 - 석룡산 능선 코스 - 석룡산 - 방림고개 - 복호동폭포 - 조무락골 - 원점회귀
https://www.bookk.co.kr/book/view/134521
https://www.bookk.co.kr/book/view/134522
https://www.youtube.com/watch?v=TrNaciVWZ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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