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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고사를 되짚다 3_ 오관육참五關六斬

장한림 2022. 3. 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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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관문을 돌파하며 장수 여섯을 베다

 

서주 전투에서 유비의 군대는 조조에게 대패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뿔뿔이 흩어졌는데 관우는 조조 군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관운장! 그만 포기하시오. 나랑 새롭게 다시 시작해 봅시다.”

 

관우는 세 가지 조건을 내걸어 조조의 항복 권유를 받아들인다.  

조조의 군대가 아니라 한나라 황실에 항복하는 것이며, 감부인과 미부인 두 명의 유비 부인을 보호해줄 것, 그리고 언제라도 유비의 행방을 알면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포로 입장에서 파행적인 조건을 내걸었으나 조조는 진작부터 관우의 인품을 흠모해왔기에 조건을 받아들이고 거기 더해 아주 극진하게 대접했다.

 

“포로가 돼서 그럴까. 수염이 자꾸 빠지는구나.”

 

관우의 멋진 수염이 자주 빠진다는 말에 조조는 비단 수염 주머니를 선물하고 한수정후라는 벼슬까지 받게 해 주었다.

 

“관운장의 말이 무척 쇠약해 보이는구려.”

“무거운 내 몸을 말이 견디지 못하는 듯합니다.”

 

관우가 대답하자 조조는 말을 한 필 선물했다. 온몸에 붉은 털이 난 적토마다. 관우는 조조에게 크게 절하며 감사를 표했다. 

 

“내가 미녀들과 금은보화를 보냈을 때는 꿈적도 않더니 말 한 필에 그리 좋아하는 까닭이 무엇이오?”
“미녀나 금은보화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적토마를 주셨으니 지금이라도 우리 형님 소식을 듣는다면 이 말을 타고 빨리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조는 관우의 대답에 말을 준 것을 후회했다. 

 

- 휴우, 오로지 마음이 유비에게 가있으니 이 사람과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구나.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던 관우는 그를 떠나더라도 그간의 신세는 갚고자 했는데 원소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안량과 문추, 두 적장을 베어 큰 공을 세웠다. 

 

- 아아, 내 동생 관우가 조조한테 잡혀있었다니. 

 

이 전투로 관우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그때 유비는 원소 휘하에 있으면서 관우의 소식을 접했다. 

 

- 형님이 거기 계셨었구나.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실까.

 

유비 소식을 듣자 관우는 떠날 채비를 하고 조조를 방문했다. 하지만 조조는 일부러 관우를 피했다. 의리와 예의가 몸에 밴 관우가 대면하지 않으면 떠나지 못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입은 은혜가 두터우나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우는 길을 떠나면서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남겼다. 조조의 부하들은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가면 후환이 되리라 염려해 뒤쫓으려 했다. 

 

“노자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소.”

 

그러나 조조는 옛 주인을 찾아가는 관우를 칭송하고 유비를 부러워하며 황금과 비단을 주어 전송한다. 

 

‘단기천리單騎千里, 한 필의 말을 타고 천 리를 내달린다.’ 

 

그런데 조조의 명을 미처 받지 못한 각 성에서는 관우를 순순히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관우가 원하는 길을 가려면 조조의 맹장들이 버티고 있는 다섯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에 관우는 동령과 낙양 등 관문을 모두 지나면서 수장守將 여섯 명을 베었다. 그리고 애타게 그리던 유비, 장비와 극적으로 해후한다.  

정사에는 관우가 다섯 관문을 통과하면서 여섯 장수의 목을 벤 줄거리는 찾아볼 수 없다. 연의를 쓴 나관중이 관우의 용맹과 의리를 부각하기 위하여 오관돌파의 줄거리를 구성해낸 건데 삼국지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삼국지에서 가장 매력 있는 인물로 꼽기도 하는 관우는 오나라 장수 여몽에게 죽었는데 이를 안타까워한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숭배했다. 우리나라에도 최영, 임경업, 남이 장군 등을 장군 신으로 모셔 사당을 짓고 제를 올리기도 하는데 중국 민간신앙에서 관우는 장군신이 아니라 황제 신으로 모셔진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온 명나라 군은 주둔지에 관우의 사당을 세웠다. 조선 백성들에게 이곳은 전쟁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났다. 삼국지연의를 읽은 왜군도 관우 사당이 있는 곳은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도 서울 동묘를 비롯해 경북 안동, 전남 남원, 인천 강화 등지에 관우 사당이 남아 있다.    

 

관우의 의리와 용맹이 돋보이는 오관돌파, 오관육참은 의와 충을 지키고자 겹겹이 쌓인 난관을 꿋꿋이 돌파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종종 인용되는데 과연 그런 고사를 인용할만한 사례가 요즘 세상에 흔히 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관우뿐 아니라 세계사 곳곳에서 신의를 바탕으로 한 사례는 후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걍팍하기 그지없는 현재의 세상에서 대리만족처럼 훈훈한 미담으로 듣는 이의 가슴을 데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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