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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에서 읽는 역사 이야기_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장한림 2022. 5. 1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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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을 적이 모르게 하라. 싸움이 시급하다.”

<영취산 -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여수 밤바다의 서정은 유명 가수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진한 감흥으로 담고 있는 풍광일 것이다. 여수 해양 공원에서 이순신 광장로를 따라 걷다가 돌산대교와 장군도, 이순신대교를 지나게 되는 길이 여수의 밤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한다.

서술한 것처럼 여수는 이순신 장군과 뗄 수 없는 연으로 맺어져 있다. 조선시대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던 곳이 바로 여수이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무관에 급제하고 배치된 곳이 전라좌수영이었으며 임진왜란 발발 한 해 전인 1591년 여기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로 임명된다. 지금의 계급으로 치면 장성급에 해당하는 직위일 것이다.

양쪽으로 도열한 진달래의 호위를 받으며 올라온다

 

전라좌수영에서 전투를 거듭하며 혁혁한 공을 세워 해군 참모총장급인 삼도수군통제사까지 오르게 되니 여수와 장군은 천생연분,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을 조성하였고 거북선 모형 전시관을 설치하여 두고두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순신 광장 주변에는 이순신 버거라는 브랜드의 먹거리를 선보이고 있어 여수 시민의 충무공에 대한 깊은 연대감을 짐작하게 한다.

오동나무 사라진 곳에 하염없이 붉은 꽃이 흐드러졌으니 동백이다. 어디선가 날아온 금빛 봉황이 오동 열매를 따 먹는다. 그러자 봉황이 깃든 곳에 새 임금이 난다는 소문이 퍼진다.

“오동나무숲에 불을 질러 태워 없애도록 하라.”

 

왕은 오동나무숲을 그 흔적까지 없애버리라고 명한다. 세월이 흘러 오동도에 어부와 아리따운 여인 부부가 살았는데 도적 떼를 만나게 된 아내가 벼랑 끝에서 푸른 물결에 몸을 던졌다.

바다에서 돌아온 지아비는 겨우 슬픔을 가누고 오동도 기슭에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렀다. 북풍한설 몰아치던 그해 겨울부터 하얗게 눈 쌓인 무덤가에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다. 여인의 붉은 순정이 동백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애틋한 사연과 함께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동백꽃이 바람에 흩어져 온통 주위를 붉게 물들인다. 11월경에 빨간 꽃망울을 터뜨려 겨우내 피어 3월경에 절정을 이룬다.

남쪽에서 북상하는 봄이 가장 먼저 볕을 드러내는 곳, 여수 오동도 내에는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심어졌다. 그 오동도에 비가 내리면 용이 지하통로로 와서 빗물을 먹고 간다는 연등천 용굴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 용굴을 막아버리자 새벽이 되면 자산공원 등대 밑에 바다로 흐르는 샘터를 이용해 용이 이동하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파도가 일고 바닷물이 갈라지는 소리가 밤하늘에 메아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바람골. 해돋이 전망대, 부산 태종대를 연상시키는 갯바위를 둘러보고 오동도를 빠져나와 여수 시가지에서 돌산대교를 건너 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마을에서 잠시 멈춘다. 요즘 수확 철을 맞은 주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루 25톤가량의 갓이 연한 맛의 김치로 담가진다. 돌산 갓은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뿌리지 않는다고 한다. 청정 남해의 역사유적지 여수를 살짝 눈여김만 하고 오늘 산행지 영취산으로 향한다.

 

바다에서 산으로 활활 타들어 가는 붉은 불길을 쫓다가 충무공을 만난다

 

 

붉고 푸른 영취산 풍광을 담고 오르게 된다

 

https://www.bookk.co.kr/aaaing89

 

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www.bookk.co.kr

 

 

경남 창녕의 화왕산, 경남 마산의 무학산과 더불어 전국 3대 진달래 군락지 중 한곳으로 꼽는 영취산은 국내에서 제일 먼저 진달래가 물드는 산이기도 하다. 꽃이나 단풍 등 그 지역의 축제 대상을 보려고 산행지를 고르지는 않지만 봄을 기다렸었나 보다. 화사한 남녘, 여수의 봄 바다와 만발한 진달래가 먼 길 영취산으로 잡아끌었다.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인식하여 기우제나 치성을 들여왔던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맨 마지막으로 설법했던 인도의 영취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정유공장, 여수 봄 바다, 그리고 산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또 진달래와 어우러진다

 

진달래 축제 행사장을 뒤로하고 정상인 진례봉까지 1.9km라고 표시된 여수시 월내동의 돌고개로 들어선다. 사진 찍느라 만면에 웃음 가득한 상춘객들이 빛깔 고운 벚꽃 터널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곧바로 산등성이 진달래 군락이 클로즈업된다. 측면 아래로는 하얀 벚꽃 숲이 장관이다. 연분홍, 진초록, 연초록에 갈색과 흰색이 약간 흐리긴 하지만 엷은 하늘색과 어우러져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듯하다.

꽃 숲 너머 여수 정유공장 굴뚝으로 연기가 뿜어 나고 그 뒤로 묘도대교가 야트막한 봉화산으로 향하다가 이어지는 이순신대교에서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을 엿보게 된다.

임진왜란이 막바지로 치닫던 1598년 12월에 벌어진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 수군과 왜군 함대 간에 벌어진 해상 전투가 노량해전이다.

산을 오르는지 꽃밭을 거니는지 헷갈리는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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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은 권율 장군이 이끄는 행주산성에서의 패배와 수군의 잇따른 패배에 더해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국으로 철군하였다가 1597년 15만 대군을 동원하여 다시 쳐들어왔다. 제2차 임진왜란이라 할 수 있는 정유재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이순신 장군을 필두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남부 해상권을 장악하자 해상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당한 왜군은 고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듬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豐臣秀吉)까지 사망하자 더욱 곤경에 처한 왜군은 자국으로의 철군을 결정하고 서둘러 후퇴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노량을 통해 도망치려 할 것이다. 거기를 막아 퇴로를 차단하라.”

 

왜군 함대가 노량을 통과할 것을 예측한 이순신은 명나라 연합군 측에 남해도 서북쪽 방면에서 일본 수군의 퇴로 차단을 요청하고 자신의 조선 수군은 남해도 서북단인 관음포에 매복시킨다.

일본 함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진입하자 이순신이 이끄는 함대가 50여 척의 적선을 격파하고 200여 명을 사망케 했다. 이순신의 수군은 왜군에 맞서 4시간여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이미 200여 척 이상이 분파되고 150여 척이 파손돼서 패색이 짙어진 왜군은 남은 배를 이끌고 퇴각하기에 급급했다.

 

 

국가산업단지다운 모습을 보게 된다

 

구국의 절실한 사명감으로 맞선 노량해전의 막바지를 더듬다가 이곳 영취산의 진달래에서 그 당시의 강인함을 반추하게 된다.공장들이 빽빽이 들어선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하여 산업시설에서 뿜어 나오는 공해를 견뎌내고 영취산을 진달래의 명산으로 거듭나게 했으니 여리게 홍조 띤 이 산의 진달래야말로 노량해전의 승리처럼 역경을 이겨낸 억척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공해에 약한 대다수 수종은 고사했고 공해에 강한 진달래가 무성하게 자리를 확보한 것이다.

흐릿한 하늘빛으로 꽃은 더욱 붉어 보인다. 산세 때문에 그렇겠지만 강화도 고려산이나 달성 비슬산의 진달래 군락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창조해낸다. 그리 높지 않게 무척 촘촘하게 피어 숲을 이룬 곳이 많다. 길마다 자연스럽게 진달래 군락으로 이어진 붉은 숲길을 올라와 뒤돌아보면 그 길은 무대로 오르는 빨간색 카펫이고 진례봉까지의 능선은 마치 붉은 안장을 올려놓은 거대한 말 등처럼 보인다.

 

 

레드 카펫을 밟고 산정에 오르는 기분이다

 

억새 군락지에 들어서면 산업단지와 바다가 다시 나타나고 드문드문 농경지도 눈에 들어온다. 풍성한 곡선미를 보이며 눈앞에 버텨 섰던 가마봉에 오르자 사방이 트여 숨차게 올라온 보람을 느끼게 한다.

광양만을 아우르는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공장이 늘어선 여천공단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이채롭다. 여수의 산이기에 볼 수 있는 광경이라 하겠다. 광양만과 공장 사이의 묘도에서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읽게 된다.

바다의 직선과 산의 곡선 흐름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전투가 급하다, 단 한 명도 동요하지 말고 전투에 치중하라.”

잔 적을 소탕하며 왜 함을 계속 추격하던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고 만다. 이렇게 명령이자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때 도주하던 150여 척의 왜 함 중 100여 척을 나포하여 겨우 50여 척의 패함만이 도주했다고 한다.

결국 외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조선 주둔 왜군은 그 즉시 퇴각하였으며 노량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이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전투는 이순신의 생애 마지막 전투이자 그가 전사한 전투로서 유명하다. 또한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을 사실상 마무리 짓는 전투라는 의미도 갖는다

그가 죽으며 끝낸 전쟁, 승리를 위해 밤 깊은 줄 모르고 작전회의를 했다는 묘도에서 좀처럼 눈길이 거두어지지 않는다.

 

“내 죽음을 적이 모르게 하라.”

두고두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군의 마지막 음성이 귓전을 맴돈다. 진례봉, 시루봉, 영취봉과 뒤로 뾰족하게 솟은 호랑산을 바라보고 걸음을 옮기는데 점점 날이 개기 시작한다. 주 능선의 좌측은 소나무 숲이고 우측은 진달래 밭이다.

진초록과 연분홍의 대비가 극명하면서도 아름답다. 아래로 파란 지붕이 많은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의 상암 초등학교가 여기 오르는 또 한 군데의 들머리이다.

 

 

 

흙과 바위를 고루 밟고 걷다가 암봉 지대인 개구리바위 전망대에서 긴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른다. 진례봉進禮峰(해발 510m), 통신탑이 세워진 공터와 한문 초서체로 휘갈겨 쓴 정상석 앞에 많은 등산객이 모여 있다.

정상 전망대에서 봉우재 부근으로도 사면을 따라 진달래가 타오른다. 눈 비비고 다시 보면 출렁이는 핑크빛 바다가 거기 있다. 계곡 쪽으로는 여름을 준비하듯 연초록으로 변색하는 중이다. 이순신대교 너머로 광양시와 백운산이 희미하게나마 시야에 잡힌다.

수많은 등산객의 발자취인 리본들은 아마도 이맘때인 봄철에 달아놓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봄철에 일행들의 길잡이가 되게끔 해주었을 것이다.

하산로에서 바위 굴을 지나고 기도 도량인 도솔암으로 오르는 기나긴 침목 계단은 그냥 지나쳐 내려간다. 봉우재에도 행사가 한창이다. 많은 차량이 주차된 봉우재를 지나쳐 지나온 진례봉과 가마봉 능선을 쳐다보곤 내처 거친 바위 봉우리인 시루봉(해발 418.7m)까지 오른다.

영취산의 봉우리들 중 시루봉이 유독 위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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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여수 바다에 눈길 담갔다가 작은 헬기장을 지나고 꽃길을 걸어 돌탑 쌓아 올려진 영취봉(해발 439m)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흥국사로 내려가는 길은 꽃길이 아닌 너덜 돌길이다. 돌이 많아서인지 돌탑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내려서고 보니 백팔 돌탑공원이라고 명명된 길이다.

용왕전이라고 적힌 현판이 있는 곳에서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흥국사에 닿자 만발한 벚꽃들이 수고했다면서 반겨준다. 고려 명종 때의 호국사찰 흥국사는 이름 그대로 나라의 융성을 위해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300여 명의 승려가 주둔하며 충무공 이순신을 도왔던 사찰로 진례봉과 영취봉이 둘러싸고 있다.

산을 내려서서도 시야엔 온통 봄 색깔이 어우러졌다. 그 빛깔은 여수를 떠날 때까지도 잔상처럼 남았는데 잠시 임란 당시 여수 앞바다를 물들인 전사자들의 핏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공장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바다엔 해무가 깔리고 있다

 

영취산 아래 돌탑공원에는

오후 햇살 타고 흐르는

힘찬 기운들이

양지쪽 암벽 감아쥐고

성큼성큼 오르는 듯하다.

 

홍조 가득한 산 내려와

다시 올려다보니

삶이 아름답단 걸 알려주는 멜로디

생기 넘치는 색감

묻어나는 것마다 봄 빛깔이다.

뿌려지는 것마다 봄볕이다.

 

혹독하기 이를 데 없던 추위

인고의 계절 보낸

헐거운 나목마다

연분홍 탄생의 모습

그 계절 긴 동면은 비록 혹독했을지언정

생생한 잉태의 시간이었음을 강변한다.

 

 

 

때 / 봄

곳 / 돌고개 주차장 - 가마봉 - 진례봉 - 도솔암 - 봉우재 - 시루봉 - 영취봉 – 흥국사

https://www.youtube.com/watch?v=JXPlcreTJUo&t=2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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