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만 가진 어리숙한 원숭이에서 탈피하고 싶다
송나라의 저공은 원숭이를 좋아해 한 식구처럼 대하며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다 보니 원숭이가 점차 늘어나 한 무리를 이루었다.
저공과 원숭이들은 오래 함께 지내면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저공은 집안 식구들이 먹을 양식까지 줄여가면서 원숭이들의 끼니를 챙겼으므로 원숭이들은 저공을 무척 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공은 원숭이들의 생각을 읽을 정도로 친근해졌다. 그런데 원숭이 무리가 더욱 늘어나자 먹이를 대는데 어려움이 커졌다.
- 이 녀석들 머릿수는 늘어나고 덩치까지 커져서 먹여 살리는 게 보통일이 아니군.
저공은 원숭이들의 배급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원숭이들에게 물었다.
“오늘부터는 너희들이 먹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려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왜 잘하시다가 우릴 굶기려고 하시나요? 그렇게는 안 됩니다.”
원숭이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너희들 뜻을 알겠다. 그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면 어떻겠느냐?”
“그건 대찬성입니다.”
원숭이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대개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이 이야기의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열자의 ‘황제’ 편 나온다. 열자는 이 우화에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에 유능하다고 자처하는 이들의 처세가 이와 다르지 않다. 지혜롭다는 위정자들이 백성을 농락하는 일은 마치 저공이 꾀를 부려 원숭이를 속이는 일과 매한가지다. 똑같은 결과물을 가지고 집행을 어찌하느냐에 따라 백성들은 일희일비한다.’
장자의 ‘제물론’ 편에도 조삼모사를 언급했는데 열자와는 그 의미의 방향이 다소 다르다. 사물의 이치를 분간하지 못하는 원숭이의 어리숙한 면을 언급하기보다는 어처구니없는 원숭이들의 제안 혹은 반발에 유연히 대처하는 저공의 차분한 처신을 주제로 드러낸 것이었다.
저공이 주인으로서의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원숭이의 관점을 포용하여 갑과 을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현명하게 조율하였다는 것이다.
장자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잣대로 원숭이들의 사고방식을 단정하는 고정관념을 경계한 것이었으니 조삼모사는 장자의 뜻과는 반대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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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다가오면 펑펑 예산을 써서 민심을 얻고 선거가 끝나면 세금을 인상해 부족한 세금을 메우는 방식의 정치행태를 볼 때마다 조삼모사의 숙어가 떠오르곤 했었다.
그럴 때면 국민이 아니라 울타리에 갇힌 원숭이처럼 느껴지곤 하여 기분이 상하는 것이었다. 열자가 묘사한 어리숙한 원숭이, 투표권을 가졌을 뿐인 바로 그 원숭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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