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6.
심판과 집행
“드러난 첫 죄목에 대한 형은 지금 즉시 집행한다.”
하데스의 목소리가 사방 벽에 부딪혀 울려 퍼진다. 형을 집행한다는 그의 말에 턱수염은 사색이 되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덩치도 몸을 움츠리고 오른손에 밴 땀을 슬그머니 바지에 문지른다. 턱수염은 뜨지도, 감지도 못하는 두 눈을 멀뚱거리다가 발목을 부여잡고 애원했다.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 제발….”
턱수염은 죽거나 병신이 될 거라는 사내의 말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란 걸 깨닫자 사력을 다해 취해왔던 탐욕의 열매들을 토해냈었다.
“겨우 일부만 뱉어냈을 뿐이야. 네 죄는 네놈이 가장 잘 알 거야. 원래대로 환원시킬 만큼의 죄였다면 애당초 내가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란다 법칙을 일러주듯 리듬 없는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하데스가 말을 맺자 최소한의 아량이라도 베풀어질 줄 알았던 턱수염은 실의 가득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금부터 네가 지은 죄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그 죗값을 물을 것이다.”
용서를 빌기 전에 잘못부터 뉘우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용서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뉘우침이 없는 죄인은 악인이다. 어찌 악인에게 아량을 베풀 것인가. 편법으로 치부를 일삼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회피해온 자가, 아주 악랄하고 치졸하게 그릇을 엎어버리고는 상대가 물을 주워 담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데스는 최소한 그가 위기 앞에서도 담대하기를 바랐었다. 꼬리를 내리는 개하고는 싸움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위급에 처했지만 도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리라 생각했다.
- 한심한 놈 같으니.
가히 전투라고 한다면 상대할 명분이 있고 수평을 이룰 만큼 팽팽해야 할 맛이 나는 게 아니던가. 하데스는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오줌부터 지리는 상대를 보니 은근히 부풀었던 승부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절벽 아래 마음 놓고 굵은 오줌발을 내갈길 때의 쾌감이라도 느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허탈감이 몰려들고 말았다.
“딱 지은 죄만큼만 응징하겠어.”
- 후우우, 어디까지 아는 거지! 하데스? 도대체 이 자는 누구란 말인가.
생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에 휩싸여 숨죽이고 지켜보던 덩치가 꿀꺽, 침을 삼킨다
하데스의 오른 팔이 머리까지 올랐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지는 것과 동시에 턱수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비명을 내지른 것 같았으나 부직포와 천에 스며들고 말았다.
하데스는 턱수염의 고통스러운 비틀림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커다란 몸을 한껏 접어 벽에 밀착시킨 덩치의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다.
처음부터 판결과 집행과정을 지켜보던 유일한 방청객,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덩치도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 다른 사람의 고통을 처음으로 네 아픔처럼 느껴봤을 거야.
덩치는 이제 처음의 기세등등하던 모습과 달리 검정 모자 사내의 눈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길을 바닥으로 내리깔기 일쑤였다.
- 흐흐흐! 더 순한 양이 되도록 해주마. 옴짝달싹 못 하도록 해주지.
거대한 모래더미가 북서풍에 격랑처럼 흔들린다. 황사 속에서 파괴되다시피 가죽이 벗겨진 파충류를 바라보는 또 한 마리의 파충류를 주시하며 웅얼거렸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주눅이 든 덩치는 “제발… 살려 주십시오.”라고 애원하며 몸을 굽혔다. 흐흐! 살려달라고? 살리거나 혹은 죽이거나 하는 건 나나 네놈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저 하늘의 뜻에 따를 뿐. 그러나 살아남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거야. 하데스는 빠르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웅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 네놈은 조직의 보스자격이 없는 놈이야.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깍두기에 불과했음을 곧 깨닫게 될 거다.
진나라의 예양은 문둥이처럼 보이려고 몸에 옻칠하고, 숯을 삼켜 벙어리처럼 행세하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지 않는가. 내가 간 칼이 예양의 것보다 무디지 않음을 보여주마. 봉합을 마친 하데스는 칠신탄탄漆身灘炭의 고사를 되새기며 일어서더니 곧게 허리를 폈다.
“살려줄 것 같았으면 애당초 네놈들을 여기까지 데려오지도 않았어. 네놈들을 죽이려고 난, 모든 걸 포기했거든. 네놈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는지 똑똑히 지켜봐 주마.”
두 마리의 파충류를 내려다보는 하데스의 동공에 가득 핏발이 섰다.
“닷새 후에 다시 심리를 재개한다. 그때는 너희 두 놈이 공모해 저지른 행위를 심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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