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2.
“이미 네놈들의 죄는 충분히 드러났다. 지금 당장 죗값을 물을 수도 있지만 잠시 뉘우칠 시간을 주겠다. 그때도 발뺌하다가 여죄가 밝혀지는 놈은 형이 가중될 것임을 경고한다.”
다리를 자르는 것 이상의 가중형벌, 그렇게 인식한 두 놈의 얼굴색이 대조적이다. 한 놈은 하얗게 탈색되었고, 또 한 놈은 검게 썩은 색깔로 변한다.
“심리를 스물네 시간 후로 연기한다. 그때까지 먹을 것도, 불도 공급하지 않는다.”
“제, 제발….”
덩치가 오른손을 뻗어 밖으로 나가려는 하데스의 옷깃을 잡으며 사정했다. 하데스의 발이 덩치의 면상을 사정없이 내질렀다. 쇳소리와 함께 뒤로 벌렁 나자빠진 그의 입술과 코에서 동시에 피가 터졌다.
“겨우 추위나 굶주림에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
덩치가 터진 입술을 어루만지며 커다란 몸을 웅크렸다. 이미 그게 얼마나 혹독한 고통인지를 경험한 그들이다. 다시 꼬박 하루를 어둠과 정적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딘다는 건 죽음보다 더한 고행이 될 것이었다. 턱수염은 그대로 주저앉아 하데스의 눈치만 살폈다. 동정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눈빛을 지으며 하데스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만일 그때도 다리 하나쯤 잘리는 걸 아까워한다면 지난번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맛볼 것이다. 두 사람 다, 알겠나?”
발목이 없어진 턱수염이 “네!”하고 제법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고 덩치는 하데스의 또 한 차례 발길질에 뒤통수를 벽에 부딪친 후에야 “예, 알겠습니다.”라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통을 줄이려 혀를 깨문다면 그건 허용하겠다.”
지옥을 다스리는 자의 소름 끼친 울림이 채 멎기도 전에 불이 꺼지더니 철컥, 철커덕 두 번에 걸쳐 문을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방안은 다시 흑암 속 공포로 변했다. 세상은 지척에도 있지 않았다.
“흐흐흐!”
방 밖에서 철문을 채운 하데스는 상대에게 잘못을 전가하며 책임을 회피하던 그들이 지금 얼마나 곤혹스러울까를 의식하면서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한 차례의 판결로 혹독한 형벌을 당한 턱수염과 그 집행을 눈앞에서 지켜본 덩치는 마냥 제 살길만 찾으려고 이전투구를 벌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둘 다 살 수 없음을 깨달았을 테니까.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그들끼리의 시간, 숨통을 조여오는 침침한 공간, 생사가 구분되지 않는 정적 속에서 공범들끼리의 합숙은 그들의 심리를 위축시키는데 큰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스물네 시간이면 그 효과를 얻는데 충분히 긴 시간이다.
이틀 후, 굳게 닫혔던 철문을 열자 악취는 더욱 심하게 풍겼다.
“둘 다 잘 지냈나.”
악취쯤은 아랑곳없다는 듯 턱수염과 덩치는 여전히 모자를 깊이 눌러쓴 사내가 던져준 단팥빵을 꾸역꾸역 입에 처넣었다.
“오늘도 변명만 늘어놓거나 지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지금 먹은 게 네놈들의 마지막 식사라는 걸 명심해라.”
“네, 알겠습니다.”
“…예.”
이번엔 덩치가 먼저 대답했고 턱수염이 따라서 대답했다. 두 사람은 엊그제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어느 정도의 체념이 따라줄 때 그 체념에 휩쓸려 진실도 드러나는 법이다. 그러나 대답과 달리 처음엔 그들도 완전히 비워내지 못했다. 턱수염은 짧아진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다시는 사지가 절단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죄를 피해 가려 했다. 몸뚱이가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덩치 역시 턱수염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야, 이 새끼야! 너 정말 끝까지 발뺌할 거야?”
얼굴이 흙빛으로 바뀐 턱수염이 구부정하게 상체를 굽히자 덩치는 오히려 고개를 치켜들며 자신은 지시에 따랐을 뿐, 큰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덩치가 흥분해서 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이 뒤엉켜 흐트러졌다.
“그렇게까지 할 줄은…”
“나쁜 새끼,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다고 두 번, 세 번 강조한 게 너였잖아.”
하데스는 지그시 눈 감은 채 그저 침묵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이었다.
- 짐작은 했다만, 남의 재물을 취하기 위해선 철석같던 동반자였음에도 위기에 처해서는 배신이 앞서는구나. 나는 너희처럼 비굴한 놈들이 역겨워 미칠 지경이다.
하데스는 심한 비애감에 젖다가 입을 열었다.
“한 놈이 사주했고, 또 한 놈이 실제 일 처리를 했다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더는 달라질 게 없다고 보이므로 이쯤에서 심리를 마치고자 한다.”
하데스는 상황을 정리하며 만지작거리던 은빛 단도를 목판에 꽂고 덧붙였다.
“이의 있나?”
“…….”
덩치가 입을 우물거렸으나 이의를 달지는 않았다. 턱수염도 고개를 수그린 채 훌쩍거리던 콧물을 들이마실 뿐이다. 하데스는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진술에서 무언가가 드러날 듯하다가 감춰지는 느낌이다. 진작부터 그런 냄새가 폴폴 풍겨서 하루의 여유를 가졌던 거였는데.
- 내가 모르는 뭔가가 아직 남아 있어.
하데스는 둘을 번갈아 살피다가 눈을 부릅떴다.
“너희 두 놈이 공모하여 일으킨 범죄임이 드러난 이상 죗값의 경중을 논할 가치도 없다. 지금 즉시 선고와 동시에 형을 집행하겠다.”
하데스는 구석에 놓인 카트를 부러 힘차게 끌어당겼다. 덮개를 활짝 열어젖혔다.
“잠깐만요.”
덩치의 다급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하데스는 느긋하게 우비를 꺼내 입었다. 지난번 턱수염의 다리를 자를 때 피로 붉게 물들었던 투명한 방수 우비이다.
“하나도… 하나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피를 씻어내 깨끗하지만, 이 우비가 너희 둘에게 얼마나 엄청난 공포를 주는지 나는 잘 알지. 하데스는 카트에 놓인 도끼를 만지며 등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아직 털어놓지 않은 게 더 있단 말이냐?”
“전, 저는 그저…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머뭇거리던 덩치가 다시 턱수염을 향해 다그친다.
“네놈들이 나를 끌어들였잖아.”
덩치의 말에 하데스의 눈이 번뜩였다.
- 네놈들?
“이 새끼랑 또 한 놈이 합작해서 저를 끌어들였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또 한 놈?”
하데스가 등을 돌려 쏘아보자 덩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묵묵히 덩치의 진술을 듣는 사내의 눈빛이 섬광을 발한다고 느낀 턱수염은 바닥에 닿을 만큼 머리를 조아렸다. 덩치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하데스는 턱수염에게 눈을 돌려 느릿하게 물었다.
“그게 사실이냐?”
턱수염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하데스는 오른발을 턱수염의 잘려나간 다리의 무릎에 얹었다.
“저놈의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어어억! 네, 그렇습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잘린 다리에 힘을 가하자 턱수염은 신음과 함께 빠르게 대답했다. 하데스의 불끈 쥔 두 주먹이 바르르 떨린다.
- 그자까지 가담했단 말이지!
거북 등에 털을 만들고 토끼 머리에 뿔 달기가 그리 쉬운 줄 알았더냐. 게임이론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덩치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흐흐흐! 네놈들 말대로 그자가 악의 축이라면 당연히 이리 초대해야겠지.”
하데스가 혼잣말처럼 내뱉자 하얀 김이 새 나왔다. 속이려 사력을 다하는 자에게 어찌 속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조작된 거짓에 영속성이 있을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한 반복에 의해서라도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쾅쾅. 위잉, 위이잉. 철렁철렁. 망치로 대못을 박고 전기드릴로 나사를 조이는 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턱수염과 덩치는 귀를 틀어막은 채 벽을 향해 몸을 접는 게 취할 수 있는 자세의 전부였다.
하데스가 철문과 마주한 빈 벽에 추가로 쇠사슬과 족쇄를 설치하자 두 사람은 더욱 겁에 질려 위축된 모습이었다.
“그자도 이리 데려온다. 그다음에 모두 마무리하겠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툭툭 턴 하데스는 방을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 그래, 잘됐어. 더욱 확실한 끝을 볼 수 있게 됐어. 네놈의 화려했던 삶도 이젠 마감할 때에 이른 듯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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