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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0_ 옥빛 사랑, 적색 욕구

장한림 2022. 3. 2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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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0.

 

 

 정태의 벗은 몸 위로 자꾸만 그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자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사람의 육신에서 그의 영혼을 느낀다는 것이 싫었다. 죄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간의 섹스는 숙명 같은 거로 생각해왔다. 그렇게 생각했던 섹스가 귀찮게 여겨질 정도로 싫었다. 식어버린 사랑의 행위. 스스로 팬티를 내리고 침대에 누워 사타구니를 벌렸지만 메마른 질 속에 수분이 생기지 않았다. 그의 몸놀림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다. 무성의한 섹스를 그는 금세 알아차렸다.

 그러나 정태는 짐짓 못마땅해하면서도 길게 화제 삼지는 않았다. 욕실에서 나온 정태는 회사 일을 화두에 올렸다. 그의 말은 현주에게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많이 생각해봤어. 현주가 본사로 와.”

 

 정태는 부산공장의 원가관리팀에서 일하는 현주를 본사재무팀으로 발령 내겠다고 했다.

 

 “불안하지 않으세요?”

 

 많은 눈이 있는 곳이다. 더구나 그가 유달리 신경 쓰는 이정후 차장이 버젓이 근무하고 있다. 그런 곳으로 자신을 불러들이겠다는 정태의 말에 현주는 의아해했다.

 

 “이 차장은 곧 유럽지사를 맡아서 나갈 거야.”

 “유럽이라고요?”

 “. 독일 뮌헨에 유럽지사를 설립하기로 했어.”

 “저를 불러올리려고이 차장님을 내보내시는 건가요?”

 

 다소 짜증이 묻은 목소리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

 “이 차장이 잠시 해외로 빠져줘야만.”

 

 정태의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정태는 회사의 기밀 사항일지라도 현주에게만큼은 서슴없이 얘기해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표정까지 굳혀가며 뒷말을 잇지 않는다.

 

 “이 차장님이 해외로 나가야만 되는 중요한 일이 또 생겼나요?”

 

 이 차장이 부재중일 때 은밀하게 진행해야 할 일이 있느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았다.

 

 “그 얘긴 거기까지만 하자.”

 

 정태는 손을 저어가며 화제를 끊었다. 재무팀이라면 정태가 관장하고 있는 사내의 여러 부서 중에서도 핵심적인 곳이다. 회사자금의 출납을 비롯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의 총체적인 관리를 담당하고 결산과 세무, 주주총회까지 관장하는 곳이다. 현주는 불현듯 자신에게까지 숨기고 있는 정태의 정확한 속뜻이 의문스러워졌다.

 

- 왜 썩 내키지 않는 거지?

 

 무척 서울로 오고 싶었다. 비록 낯설고 물선 곳이지만 서울에서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거란 막연한 생각을 지녀왔었다. 그래서 본사 근무를 염두에 두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재무팀으로의 발령에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종범. 주범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범죄에 가담하는 똘마니 범인을 그렇게 일컫던가.

 현주는 무조건 정태의 뜻을 따르던 자신의 지난날들이 종범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걸 의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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