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방사에서 연화봉, 비로봉을 올라 천동계곡으로 이어지는 백설의 세상, 소백산 눈꽃 산행
소백산은 1987년 열여덟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322.011㎢의 공원 면적으로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다.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국망봉, 연화봉, 도솔봉 등이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솟아있으며 봄 철쭉, 겨울 눈꽃이 장관을 이룬다.
경상북도 최북단에 위치하여 강원도 영월군,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영주시는 남으로 안동시와 예천군을 접하고 있다.
영주시는 외나무다리를 길게 이어 지나갈 수 있는 영주 무섬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안양루가 있는 부석사,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바로 옆의 선비촌, 그리고 인삼박물관 등 가볼 만한 곳이 수두룩한 관광명소이다.
2012년 경북 영주시, 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에 걸쳐 총 거리 143km에 이르는 12구간 코스의 소백산 자락길이 완성·개통되었다. 문화생태 탐방로로 이름을 올렸고,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된 소백산 자락길은 공원구역, 인근 마을과 계곡 및 국립공원 구간을 통과하는 탐방로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인삼으로 특히 유명한 영주시 풍기읍은 무엇보다 소백산을 끼고 있어 정겨움이 더한 곳이다. 예로부터 소백산 일대는 산삼을 비롯해 많은 약초가 자생하여 풍기읍은 이들 약초의 집산지가 되었다. 산삼이나 약초를 캐려는 게 아님에도 풍기읍으로 온 건 순백의 계절에 소백산 희방사 코스를 택해 한 점 눈송이로 어우러지기 위해서이다.
소백산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신성시해온 영산 중의 한 곳이자 영남지방의 진산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국경을 마주하고 자웅을 겨루며 수많은 애환을 남기기도 하였다. 웅장한 산악경관은 물론이며 주변에 부석사, 온달산성 등 명승고적이 많아 1987년 이 일대를 소백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한반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장대한 백두대간을 잇고 사철 제각기 특출한 신비로움을 간직한 소백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위시하여 연화봉, 형제봉, 신선봉, 국망봉 등 여러 봉우리가 능선으로 연결되어 웅장한 위용을 뽐낸다.
설국열차의 레일 깔린 소백산 정상
희방사역 맞은편 마을 길을 따라 계곡을 따라가면 희방사 제1 주차장이다. 희방사 통제소를 지나 소백교 갈림길에서 왼쪽 오솔길을 따라 걷는 희방사 탐방안내소까지 짧은 길이 아니다.
탐방안내소 가까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돌아 올라서면 희방폭포다. 해발 700m 고지에 있는 희방폭포는 영남 제1의 폭포로 높이가 28m에 달한다.
“하늘이 내려주어 꿈속에서 노니는 곳天惠夢遊處이로다.”
연화봉에서 발원하여 수천 굽이를 돌고 또 돌아 흐르다 이곳에서 한바탕 천지를 진동시키는 장관에 넋을 잃어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은 그렇게 감탄했다고 한다. 45년간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시며 모진 세월을 견뎌낸 인물답지 않게 감성이 풍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을 통과하여 10여 분을 올라 희방사喜方寺에 이르렀다.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차분해진다. 울창한 수림이 뒤덮어 단아하고 아늑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두운 대사가 해발 850m의 이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두운은 태백산 심원암에서 이곳의 천연동굴로 옮겨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밤 호랑이가 찾아와 무언가 호소하는 몸짓을 보이기에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걸려있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먹어댄 모양이구나.”
비녀를 뽑아내자 호랑이가 온전히 돌아갔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어느 날 그 호랑이는 정신 잃은 어여쁜 처녀를 등에 태우고 왔다.
“야, 이놈아! 여기가 보건소인 줄 아느냐.”
“혼자 적적하실 것 같아서 은혜도 갚을 겸……”
“또 이런 짓 하면 비녀를 다시 목구멍에 박아버리겠다.”
처녀를 정성껏 간호하여 원기를 회복시킨 다음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겨울을 넘긴 뒤 처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나무아미타불, 댁의 따님 덕분에 아주 힘든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러셨겠습니다. 스님.”
계림의 귀족인 그녀의 아버지 유석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두운이 수도하던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주었으며, 무쇠로 수철교水鐵橋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두운 스님은 절 이름에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와 두운 조사의 참선 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을 써서 '희방사'라 명한다. 호랑이와 처녀에 얽힌 희방사 창건설화이다. 희방사에는 은은한 종소리로 잘 알려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6호 동종銅鍾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도 2기가 있다.
희방사에서 우측 비탈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눈으로 뒤덮인 급경사를 거슬러 올라 지능선에 닿았다. 희방 깔딱재(해발 1050m)라고 불리는 이 고개에서 거친 숨을 고른다. 여기서 연화봉까지 1.6km가 남았다. 수치상의 거리보다 훨씬 힘을 빼게 하는 코스인지라 거리 개념은 무의미하다고 하겠다.
“와아~ 멋지네요.”
“역시 힘들인 만큼 보답을 해주네요.”
왼편 북릉을 타고 급경사 능선을 길게 오르자 철쭉 군락지의 상고대가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함께 올라온 일행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두툼한 눈꽃도 겨울 산행의 미각을 한층 돋워준다.
죽령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연화봉(해발 1376.9m)에 닿자 얼어붙은 공간을 뚫고 제2연화봉과 천문대가 선명하게 형체를 드러냈다. 주봉인 비로봉 너머로 함백산과 태백산이 이어지는 산악 설국 백두대간을 바라보자 눈이 시려 오는 듯하다.
여기부터 북동 방향으로 등산로가 완만하게 이어지고 주변은 설화가 만개하여 계절의 경이로운 개성에 선뜻 동조하게 된다. 잠시 눈 덮인 소백산천문대에 눈길을 머무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눈발이 흩날린다. 서둘러 비로봉으로 향한다.
경북 풍기와 충북 단양이 경계를 이루면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따라 30여 분을 걸으면 제1 연화봉이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면서 제법 눈발이 굵어진다. 파란 하늘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눈꽃에 더욱 살점이 붙는다.
계속해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늘 하산 코스인 천동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나무계단을 따라 더 오르면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해발 1435m)이다.
비로봉 서북쪽 일대 수만 평 초원지대는 수많은 야생화의 보고이자 솜다리라고도 일컫는 희귀 식물 에델바이스가 자생하는 곳인데 지금은 백색의 설원이다, 바람이 몰아치며 쌓였던 눈이 다시 휘날린다.
두어 달 후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진달래가 지면 이어서 철쭉에 원추리꽃 무리가 화사할 천상의 화원에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구름을 밀어 국망봉을 넘고 있다.
산을 넘으려는 눈구름과 사력을 다해 버티는 국망봉이 치열하게 샅바 싸움을 벌인다. 결국, 산을 건너지 못한 구름이 꼬리를 잘린 채 골에 파묻히고 만다.
어의곡 방향의 긴 데크 길이 설국열차가 지나갈 레일처럼 길게 뻗어있다. 눈발을 피해 고개 숙인 채 그 길을 걸어오는 산객들의 모습에서 깊은 동지애를 느끼게 된다.
“너무 춥습니다. 그만 내려가시죠.”
함께 온 산악회원들과 천동으로 방향을 잡고 하산을 서두른다. 긴 계단을 내려서서 천동 삼거리에 이를 즈음 날이 개기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서 보이는 계곡도 꽁꽁 얼어붙었다. 거기 허영호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걸음을 멈춘다.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한 인류 최초의 탐험가’
그를 단적으로 표현하기에 적절한 수식어이다. 북극과 남극, 에베레스트가 지구 3극점이다.
아시아 대륙 네팔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아메리카 최고봉인 남미의 아콩카과, 알래스카에 소재한 북미대륙의 매킨리,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유럽 엘부르즈, 오세아니아 칼스텐츠에 이어 남극 빈슨매시프까지 모두 정복했다니 인간의 한계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이나 하겠는가.
덧붙이면 허영호는 국내 산악인 중 높이 8000m 이상의 고봉을 가장 많이 등정한 산악인이며, 뼛속까지 모험가 기질이 밴 사람이다.
초경량항공기 조종면허증을 획득하더니 2008년 4월 초경량 비행기 '스트릭 새도'를 타고 경기도 여주에서 제주도를 거쳐 다시 돌아오는 국토종단 왕복 비행에 성공했고 독도 비행에도 성공했다.
경외감 그득한 눈빛으로 그의 기념비에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는 다리안폭포를 지난다. 크고 작은 소를 이룬 삼단폭포가 예전의 구름다리 안에 있어 다리를 건너와야 볼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하산 날머리 천동리에 내려와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천동동굴을 들러본다. 1977년 2월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된 석회암층 천연동굴은 그해 12월 충청북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었다. 470m 길이의 동굴은 약 4억 5000만 년 전부터 각양각색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생성됐다. 고씨굴, 환선굴 등 여러 곳의 천연동굴을 보아왔지만, 그때마다 그 신비로움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언제든 맘 내키면 주저 말고 달려오시게.”
천동동굴을 나와 다시 올려다보는데 소백산은 아무 때건 오라고 한다.
“그러겠습니다.”
지난해 철쭉 철의 봄 소백산과 마찬가지로 겨울 소백산 역시 제 계절을 가장 잘 표출할 때 왔다 가니 상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 / 겨울
곳 / 희방사역 – 희방사 탐방안내소 - 희방폭포 - 희방사 - 희방 깔딱재 - 연화봉 - 제1연화봉 - 소백산 비로봉 - 다리안폭포 – 천동 탐방안내소
https://www.youtube.com/watch?v=eG9huMcF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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