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몇 이파리 몸뚱이에 매달렸을 뿐이라고 세월아,
그리 슬퍼 말아라.
저기 바닷바람이 차올라와 흔들어댄다고 가을아,
굳이 소리 내어 울 일까지 있겠느냐.
일진광풍 휘몰아 이 골짜기 휘저은 게 어디
한두 해 일이었더냐.
꼭지 떠난 고엽이 눈발에 휘둘리다 서해에 떨어져
어딘지도 모르고 쓸려가는 건 늘 있던 일 아니더냐.
풍성히 지녀 외려 애환으로 속 태울 때가
더 많지 않았더냐.
낙조보다 더 붉게 자신을 태우고 갈바람에 온몸 던져
훨훨 트인 창공을 향해 연주를 해대지 않았던가.
우레의 폭우를 견디다가 여삼추 붉은 태양에 몸 말린
일들을 매일 단추 끼우듯 반복하지 않았더냐.
다 내려놓고 허허롭게 이 세상에 적응함도
쏠쏠한 행복이라 생각 들지 않는가.
계절의 흐름에 터억 내맡겨놓고 물들었다가, 영글다가
부스럼 떼어버리듯 훌훌 털어내는 것도 거듭나는 기쁨이라 여겨지지는 않더냐.
슬픔 가리려는 황혼 속 가녀린 흐느낌 같다가도 꺽 꺼억, 통곡하듯 메인 목, 비틀다가도 황홀한 선율로 승화됨이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싱그럽게 그을렸다 곱게 물들인 피부를 벗겨냄이
쓰라리다면 다시 올 담홍 빛 계절 추억 삼아
닿는 바람을 잊어보자꾸나.
거목을 휘감고 오르다 제풀에 꺾인 넝쿨이 고사한 것도
느긋한 쉼이요,
허옇게 낀 상고대 또한 동면을 취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차고 올라 제시간 채우려는 계절의 움직임은
지당한 윤회의 순리일 뿐.
해거름 붉은 노을 드리운 바다,
그 위 산기슭으로 짙게 번지는 어둠 중에도
초저녁별 미소 띠는 모습이 정겹지 아니한가.
슬픈 여운 가시지 않더라도 촛불 하나 속 깊이 밝혀두면
어느 순간 푹한 정으로 바뀌어 있음을 느끼게 될 걸세.
그 속 귀퉁이에 텅 비워둔 빈 그릇엔 외로움이 벗겨지고
감미로운 달빛이 채워져 있음을 보게 될 걸세.
스산하도록 청아한 산정 억새의 일렁임에서도
훈훈한 온기를 느끼고 말 테지.
그럴 때면 한시도 주춤거리지 말고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굴며 흥건히 춤이라도 춰보자꾸나.
뒤엉켜 신명 난 춤사위 뒤엔 한 점 아쉬움도
남아있지 않을 걸세.
애태우던 그리움마저 파란 불꽃으로 타올랐다 하얗게
산화되고 말 테지.
풀려다 되레 엉켜진 실타래의 매듭 하나가
툭 풀어지는 소리를 듣게 될 테지.
푸르디푸른 여름도,
붉다 멍들어진 가을도, 그네들은 우리에게
내어줄 걸 모두 내주었지 않았는가.
<거제도 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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