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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 진달래 만발한 하늘 지붕,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

장한림 2022. 3. 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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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만발한 하늘 지붕,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

 

1998년 람사르협약 등록 습지가 되었고 2011년 천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재지정된 국내 최대의 자연 늪인 우포늪이 창녕에 있고 부곡온천도 거기 있다.

경상남도의 중북부 산악지대 창녕군에 소재한 화왕산火旺山은 낙동강과 밀양강이 휘감아 흐른다. 마른 억새와 제철 진달래가 오묘하게 대비를 이루는 화왕산을 목적지로 하고 왔으나 기왕에 멀리 온 길이라 관룡산과 구룡산을 연계하여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를 택했다.  

 

갈색과 분홍이 어우러진 남도 고원

가을 송이로 더욱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는 옥천마을이 차량 도착지이다. 옥천 주차장에서 200여 m 아스팔트 길을 걸어 옥천 식당으로 이동하여 창녕 학생수련원을 끼고 오르면서 화왕산으로 들어서게 된다. 

평범한 소로를 따라 오르다가 다소 산만한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뚜렷하지 않은 등산로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리본들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달리 길이 나 있지 않으므로 길을 놓칠 염려는 없어 보인다. 

지능선에 올라서자 소나무 틈으로 햇빛을 받은 진달래 무리가 화사한 색감을 뽐내고 있다. 평온하고도 어여쁜 길이다. 진달래 늘어선 능선을 따라 서서히 조망이 트이는가 싶더니 바로 685m 봉에 닿게 된다. 비들재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진행 방향으로 화왕산 정상과 배바위, 그 오른쪽으로 관룡산과 구룡산이 파란 하늘과 간간이 흐르는 양떼구름을 이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영취산과 신선봉도 그리 멀지 않다. 아래로는 막 산행을 시작한 옥천마을이 아늑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능선과 달리 비탈진 암릉 사면은 꽤나 날카롭다

안부로 내려가 723m 바위 봉우리로 다시 올라서면서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을 많이 보게 된다. 바위 봉우리에서 멀리 사방을 둘러보고 753m 봉에 이르자 얼추 화왕산 정상과 눈높이가 비슷해진다.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고원지대에 구불구불하게 쌓인 성곽이 눈에 들어오는데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을 복원한 둘레 약 2.7km의 석축산성으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의병 990명이 분전한 곳이다. 

화왕산은 선사시대 때 화산이었다. 삼지라고 부르는 세 개의 못(용지)은 화산의 분화구였는데 그 후 이 둘레에 산성을 지었다. 이 성안의 삼지三池에서 정기를 받아 창녕 조 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은 창녕에 거주하는 많은 조 씨들의 자부심으로 회자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신라 때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은 선천적인 복통이 있어 백약이 무효이던 차에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화왕산 용지에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갑자기 운무가 일어 어두워지면서 물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얼마 후 운무가 걷히면서 못 한가운데서 솟구쳐 나왔는데 그 후 복통은 씻은 듯 완쾌되었지만,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게 되었고 겨드랑이 밑에 曺조 자와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어느 날 꿈에 늠름한 체구의 사내가 나타나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나는 동해 신룡神龍의 아들 옥결玉抉인데 이 아이의 아비다. 이 아이를 잘 기르면 크게는 공후公候가 될 것이고 적어도 경상卿相은 틀림없을 것이다.”

 

이광옥으로부터 이 사실을 들은 신라 진평왕은 아이를 보자고 하였다. 아이의 특출한 풍모와 겨드랑이 밑의 글 무늬를 보더니 성을 조曺 씨로 사성賜姓 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지어주었다. 이 아이 조계룡은 성장하여 진평왕의 사위가 되고 창성 부원군에 봉하니 곧 창녕 조 씨의 시조이다.

 

“옥결이란 자가 예향을 건드리고 합의금을 톡톡히 지불했구먼.” 

 

신성한 성씨 유래를 묘하게 비틀어 해석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돌부리에 걸리고 말았다.

 

“진작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역시 신령하신 동해 신룡의 아드님이십니다.” 

 

쑥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산성을 건너간다. 고원지대에 특출하게 튀는 암릉이 있는데 배바위라고 부른다. 그 바위 아래의 자하곡에서 오르는 능선으로 산객들 행렬이 이어졌고 더 아래로 창녕 읍내와 농경지가 드넓게 펼쳐졌다. 

남도의 산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호남의 평야는 주변 산세가 부드럽고 지세가 온화해서인지 편안하고 풍성한 느낌이 들게 한다.

널찍한 배바위에서 뜨는 해처럼 전성기를 맞아 곱게 물든 진달래 군락과 은인자중 하며 가을을 기다리는 억새밭에 눈길을 머물다가 정상으로 향한다. 키 큰 억새는 메말랐어도 하늘거리며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너희들 세상이 오겠지?” 

 

억새 숲길을 걸으며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억새를 조심스레 보듬어본다. 

2009년 2월 9일 대보름맞이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 중 오랜 가뭄으로 바싹 마른 억새군락이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으로 인해 대형화재로 번지고 말았다. 이 불로 관광객과 현장 공무원 여섯 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1995년부터 이어져 오던 억새 태우기 행사는 6회 만에 폐지되었다.

성곽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남도의 고원에서 갈색과 분홍의 어우러짐에 잠시 고조되었던 기분이 바로 시들해진 건 그 당시의 불행한 사고가 떠오르면서이다.

진달래군락을 거쳐 화왕산 정상에 이른다

“거기도 사람들 많지요? 올해도 참꽃이 여전히 아름답지요?”

 

화왕산 정상(해발 756.6m)에 이르자 비슬산이 반갑게 손을 내밀기에 호들갑을 떨고 말았다. 두 해 전, 여기처럼 넓은 고원지대의 산정에서 대견사로 향하며 누렸던 참꽃 향연이 엊그제였던 양 눈에 밟힌다.

 

“오늘은 안 가본 이웃 산들을 찾아 남도 유람 중이랍니다.”

“안전한 산행이 제일 즐거운 산행일세. 무리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듯하니 늘 조심하시게.”

 

대견봉의 정문일침에 얼굴이 붉어져 얼른 동문 쪽으로 내려서고 만다.  

   

메주를 얹어 놓은 듯 촘촘한 성곽을 끼고 관룡산으로  

동문으로 가면서 보니 능선을 중심으로 좌우측이 확연히 다르다. 왼쪽 진달래 군락과 오른쪽의 마른 억새밭이 야구장의 1루와 3루로 나뉜 각각의 관중들처럼 느껴진다. 분홍 유니폼과 갈색 유니폼의 열띤 응원전은 분홍 팀의 만루 홈런 한 방으로 승패가 갈린 것처럼 보인다.

북쪽 사면으로 이동하는 능선을 따라 걷다가 성곽에서 동문을 빠져나와 허준 세트장으로 향한다. 관룡산으로 가는 길이다. 복원된 성곽이 다른 산들의 성곽과 달리 두툼하고 메주를 얹어 놓은 것처럼 촘촘하다. 임도를 따라 허준 드라마 촬영세트장에 이르자 주변에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채 피지 않은 할미꽃 몇 송이가 지은 죄의 사함을 받지 못했는지, 아직 봄의 완연함을 인식하지 못하였는지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얼마나 매서웠으면

움츠린 어깨 구부정 펴지지 않을까.

동면에서 깨기까지 얼마나 시렸던가.

어찌나 허했으면 차라리 깨어나지 않을 죽음이길 바랐을까.

애타게 부여안아 그예 잉태의 순간 다가오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그 호된 기억들, 

잠깐의 선잠이라 여기고 태동의 환한 미소 짓겠네만. 

     

몇 채의 초가를 지어놓은 울타리 옆을 지나노라니 스스로 드라마 허준에서 행인 A 쫌으로 여겨져 걸음걸이에 신경이 쓰인다. 관룡산 방향으로 가는 길목 울타리에는 많은 리본이 달려있다.

화왕산에서 관룡산 구간은 온통 진달래 터널이다. 반대편에서 오는 산객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이번 산행을 마치면 비슬산을 내려와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물이 분홍 덧칠을 한 것처럼 보일 것만 같다. 

공터처럼 평평한 청간재를 지나고 숲길을 빠져나와 관룡산(해발 754m)에 도착한다. 나무들이 일대를 덮어 주변을 살필 여지가 없다. 화왕산과 마찬가지로 여기 관룡산도 부곡온천을 겸해 산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부근에 사적 65호인 목마산성이 보존·관리되고 있으며 주로 옥천마을을 기점으로 관룡사, 원통골, 화왕산을 연계하여 산행한다. 

다시 진행하면서 보게 되는 구룡산 가는 길은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바위 구간이다. 첫 바위 봉우리에서 내려서면 용선대를 거쳐 곧바로 관룡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밧줄을 붙들고 매끈한 바위가 겹겹이 얹힌 구간을 오르자 청룡암과 더 아래로 관룡사가 보인다. 초록과 분홍 세상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 사찰의 지붕들에서 지난겨울, 온통 하얀 설원의 까만 점으로 존재했을 걸 상상하니 시간의 흐름이 주는 역동감과 한편으론 무상함을 의식하게 된다.   

 

아찔한 기암 묘봉과 아홉 용머리의 구룡산 

구룡산으로 가는 바윗길 능선은 계룡산 자연성릉을 닮았다. 많은 산객들이 암릉의 묘미를 즐긴다. 멀리 아득한 천 길 벼랑 위에 고인 듯 얹힌 듯 아슬아슬한 수평 바위가 참선 바위이다. 가까이에 수직으로 허공을 찌르는 병풍바위도 아찔하게만 보인다.

부곡온천으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100여 m를 올라 구룡산 정상(해발 741m)에 도착했다.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어도 조망과 산세는 구룡산九龍山이 더 빼어난 듯하다. 아홉 개의 바위가 용머리와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구룡산답게 기기묘묘하게 생긴 봉우리들을 즐기게끔 산행의 미각을 돋워준다.

관룡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따라 걷는다

구룡산에 있는 관룡사, 청룡암, 극락암, 흑룡암, 황룡암, 령은암, 동암의 1 사찰 6 암자 명칭 다수에 용자가 붙어있어 흔하디 흔하게 용을 소재로 한 전설도 부지기수 많을 거로 여겨진다. 

정상에서 바위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아까 보았던 참선 바위에 다다르자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달리 참선이겠는가. 불결하고 어지러운 속을 쏟아내고 이 산에 흐르는 순결한 바람을 채워 넣으면 그것이 참선 아니겠는가. 여기 앉아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만 세상을 보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부처이고 예수일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귀한 깨달음을 얻고 길을 이어가자 절벽 귀퉁이에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은 파란 지붕 청룡암이 다시 보이고 툭 튀어나온 바위 아래로 노단이 저수지도 눈에 들어온다. 노단이 마을과 관룡사 분기점에서 1km 거리의 관룡사 쪽으로 내려가다가 돌아본 구룡산 암릉은 아니나 다를까 우람한 근육질에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내려오다가 굴 하나를 보게 되는데 꽤 큰 바위 아래의 틈으로 먹을 수 있는 물이 나온다. 이런 데에 석간수가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샛길로 빠져 용선대에도 들러본다. 천혜의 장소는 가는 이를 잡아끌고 보는 이는 어김없이 그리 향하게 된다. 자연이 주는 혜택, 산이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매년 정초 창녕군민들의 해맞이 장소답게 빼어난 장소에 자리 잡았다. 해맞이 후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준비한 떡국을 함께 먹으며 새해 새 아침을 연다고 한다. 또 동짓달에는 입시생 부모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려 팥죽 부처님이라고도 불리는 용선대 석가여래 좌상은 통일신라 시대의 석불로 보물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틀 무렵이면 동향으로 정좌한 돌부처는 햇살을 받아 눈부신 황금 부처로 변신할 걸 떠올리니 이 세상 모든 부처 중 최상의 부처가 바로 이곳의 석가여래 좌상이 아닐까 싶다. 

다시 관룡사로 내려가다 보면 산허리 옆으로 800여 평의 커다란 분지가 있고 그 한가운데 커다란 주춧돌이 있는데 옛 옥천사 절터인 옥천사지이다. 

관룡사는 화왕산과 관룡산의 부드러운 산마루와 구룡산 병풍바위 아래의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이 잘 어우러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경내에서 바라보는 구룡산은 구도가 잘 잡힌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신라 8대 사찰 중 한 곳이라는 이 사찰을 창건할 당시 화왕산의 세 연못에서 용 아홉 마리가 하늘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 하여 관룡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관룡사는 일주문이 아닌 아담한 석문을 통해 넘나 든다. 경내를 빠져나가 목장승이 아닌 흔히 볼 수 없는 석장승 둘이 양옆으로 서 있다. 남녀 한 쌍의 화강암 장승은 관룡사 소유 토지의 경계를 표시한 장승이지만 부부처럼 보여 그 사이로 빠져나오기가 살짝 황송하다.

 

“오늘 여러 번 황송하군.”

 

어렵사리 실행에 옮긴 남도 진달래 산행이 여기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 아래에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나름 진달래 산행이라 통칭했지만, 진달래보다는 남도의 미답지 산들을 탐방하고자 한 것이었고 산행과 더불어 자투리 시간에 곳곳의 명소를 방문할 수 있어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때 / 봄

곳 / 옥천 주차장 - 685m 봉 - 753m 봉 - 화왕산성 - 배바위 - 화왕산 - 허준 드라마 세트장 - 청간재 - 관룡산 - 구룡산 - 용선대 - 관룡사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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