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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8_ 옥빛 사랑, 적색 욕구

장한림 2022. 3. 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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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8.

 

 

 은연중 자신과 오정태 전무와의 만남을 합리화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는 아니었을까. 숨죽이며 감춰둔 비밀이 버거웠던 걸까. 현주는 말을 꺼내놓고도 괜한 입놀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후는 두부 썰듯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대다수 불륜이고 유희에 불과할 뿐이지.”

 “어떻게그렇게 단정하세요?”

 

 현주는 귀를 쫑긋하고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현주는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비록 미혼남녀는 아닐지라도 진심이 통하고 그리운 감정이 솟구친다면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주를 힐끔 쳐다본 정후는 창을 내렸다. 바람이 시원했다.

 

 “솟구치는 감정의 빛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 그 감정이 맑은 옥빛이면 사랑이고, 탁한 적색이면 추접스러운 욕구일 뿐이지. 그렇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에서 맑은 옥빛을 보기가 쉬울까.”

 

 남녀 간의 에로스를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부처 되기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거란 말에 공감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욕구에 연연하는 부처는 말이 되지 않는다. 정후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맑은 옥빛에서 출발해 끝까지 그 순수함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우니까 만나고, 만나서 함께 잘 수 있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 자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 상대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사랑의 이미테이션이라고 봐야겠지. 사랑을 가장한 욕구의 발산, 쾌락을 위한 불륜, 한마디로 짝퉁이지.”

 

 현주의 이의제기에 정후는 단호하게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고귀한 단어가 사랑이야. 그 사랑을 전도되어버린 쾌락이라든가 절제 없는 욕구 따위와 혼동한다면 그건 사랑을 비하하는 거야. 사랑을 욕되게 하면 벌 받아.”

 

 그렇게 거침없이 표현하고서는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야.”라며 마무리했다. 정후는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은, 함께 가정을 꾸려 가족을 이루는 거로 생각해왔다. 가족이 없이 외롭게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개념 지은 사랑이 육체나 탐하는 추잡한 욕구와 동등하게 취급되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 괜한 얘기 꺼냈나 .

 

 현주는 마치 나무라듯, 설교하듯 말하는 정후의 가차 없는 어투에 할 말을 잃었다. 반론을 제기하고도 싶었으나 더는 말을 이을 수도 없었다. 오정태 전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지만 그와의 관계가 설령 사랑이라 해도 둘의 관계를 정후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 전무의 부인을 친 고모처럼 생각하는 그였다. 그의 단정처럼 탐닉을 위한 그리움이고, 쾌락을 위한 불륜임을 강하게 부인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잠시 생각에 골똘해 있는데 정후가 던진 한마디는 예리한 활촉처럼 현주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 사람이 유부남이야?”

 

 정후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가볍게 핸들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현주는 호흡이 가빠왔다. 창밖에 시선을 내던진 현주가 아무런 대꾸도 없자 정후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 말이 좀 거칠었군. 내 짧은 상식에서 파생된 주관일 뿐이니까 담아두지 마.”

 

 위로인지 비아냥거림인지 구분되지 않는 정후의 말이 현주에게는 곪은 상처가 건드려진 것처럼 쓰라렸다. 참으로 호된 아픔이다. 그의 말은 마치 자신의 비밀을 모두 파악하고 서서히 그 비밀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들렸다. 송곳을 비틀어 후벼 파는 것처럼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탁한 적색, 절제 없는 욕구

 

 침대에 느긋하게 누운 정태의 벗은 몸을 천천히 마사지하고 부드럽게 애무하다가 땀에 젖은 채 몸을 섞어 불꽃 같은 쾌락에 빠지고, 흥건하게 묻어난 정액을 닦아내던 많은 날들이 현주의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정후의 말대로 그건 탁한 적색을 띤 욕구나 다름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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