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1_ 또 한 명의 공범

장한림 2022. 3. 2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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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1.

 

또 한 명의 공범

 

 

두 마리의 이리가 나란히 걷고 있다. 한 마리는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은데, 다른 한 마리는 그 반대다. 두 짐승이 나란히 걸으며 애써 균형을 맞추려 하지만 결국 두 마리 모두 자빠지고 만다. 그러자 그때부터 서로 먼저 일어서려 상대를 누르고 할퀸다.

 

이런 쳐죽일 새끼를 봤나. 네가 다 시켜놓고 인제 와서 나한테 덮어씌우는 거냐.”

 

닷새가 지나 한 놈이 다시 핏발을 세우니 다른 한 놈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신다. 작위적인 맞춤의 요철에 균열이 생기더니 급기야 부서지고 만다. 억지연출로 조작된 삶에 금이 가면 가장 빨리 드러나는 건 역시 본성이다. 나약하고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본성.

 

저 새끼가 선금까지 주면서 일을 처리해달라고 했습니다. , 이 새끼야! 그래? 안 그래?”

네가모든 걸 알아서 처리하겠다고너만 믿으라고 했잖아.”

 

저 자신의 죄에 앞서 악착같이 상대의 잘못만을 물고 늘어지려는 턱수염과 덩치를 보며 하데스는 두 마리의 이리가 물고 뜯는 낭패狼狽의 어원을 떠올렸다. 허술한 유착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그나마 일말의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추한 꼴을 보게 된다. 하데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이새끼, 너 죽을래? 네가 감히 나한테.”

 

덩치는 족쇄만 채워지지 않았으면 금방이라도 턱수염을 죽여 버릴 듯 기세가 등등했다.

 

- 쯧쯧, 치졸한 놈들. 날을 갈면 무엇하리, 연못에 빠진 도끼가 그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도끼뿐 아니라 제 몸뚱이까지 연못 속에 빠진 줄 모르고 오로지 도낏자루를 잡으려고 안달인 덩치의 태도에 하데스는 끌끌, 혀를 찼다. 상대를 밟고 일어서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온 자답다. 가증스럽. 하데스는 앉았던 나무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상을 움켜쥐려고 서로를 필요로 했던 두 사람은 막상 공범의 신분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상황이 둘 모두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전개되자 그들은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허둥대는 것이었다.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미루는 그들 모습에서 하데스는 마치 두 눈을 쉴 새 없이 굴리는 카멜레온을 연상했다.

쉼 없이 긴 혀를 날름거리는 또 한 마리 카멜레온의 흥분된 악다구니가 초록은 동색임을 재차 확인시키고 있다.

 

아직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 살기에 급급한 네놈들을 보니 타고난 습성은 결코 고칠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겠구나.”

 

챙 밑의 눈동자가 두 사내의 눈을 파고들듯 노려보자 그제야 둘은 기가 꺾여 고개를 숙였다. 1차 형벌로 다리가 잘려져 나간 턱수염은 더더욱 남아 있는 몸뚱이에 애착을 뒀다. 아직 네 몸에 붙어있다고 해서 네 거로 생각하면 넌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살아야 할 가치는 팽개친 채 삶 자체에 집착하는 턱수염을 보며 하데스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네놈들의 비열한 태도에 구토가 오를 것만 같다. 네놈들이 살아온 추잡한 모습을 단번에 보는 것 같아 속이 뒤집힐 지경이란 말이다.”

 

겨우 같은 고향, 같은 학교 따위의 인연을 큰 결속인 양 내세워 유유상종 모이더니 결국 억지 묶음이자 어설픈 하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하데스는 그렇게 얽힌 하나가 과연 얼마나 잘 섞이고 버무려졌는지 시험하고픈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역시 그 섞임은 하나가 된 게 아니라 하나처럼 목적만 공유하고 있었다는 걸 거듭 확인했다.

그들의 하는 짓을 지켜보다가 하데스는 게임이론을 적용하기로 했다. 수사관이 공범을 취조할 때 응용하기도 한다는 유명한 경제학설, 게임이론은 공범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유리한 입장을 위해 다른 공범과의 의리는 저버릴 수밖에 없음을 정형화시켰다.

사실을 말하면 형량을 감해주지. 대신 다른 공범이 먼저 사실을 털어놓으면 당신이 그자의 형량까지 감내해야만 할 거야. 수사관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공범자들은 심한 갈등에 빠져들고 만다. 다수 국가에서 합법화된 수사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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