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_ 때 묻지 않은 원시림, 백두대간 길목의 석병산
암봉과 단애의 근엄한 위용
산은 그 지질 형태에 따라 보통 흙산과 바위산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 산 중 암봉과 기암으로 유명한 바위산들을 추렸습니다. 그런 산들은 대개 험산 준령이라든가 악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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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벽지의 천연 그대로의 수림, 석병산에서 여름을 잊다
짙푸른 산자락 아래 맑은 실개천이 흐르고 그 사이로 평온하게 자리 잡은 옥계면 산계리까지 차를 몰고 들어간다. 강릉 옥계에서 골짜기를 따라 깊이 들어와 마을을 이룬 성황뎅이라는 곳이다.
버스 정류소가 있고 보건진료소가 있고 마을회관도 보인다. 그리고 흔히 방사탑防邪塔이라고 부르는 돌탑을 지난다. 마을 한쪽에 어떤 불길한 징조가 있거나 어느 한 지형이 부실해서 허虛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 허한 방위를 막아야 마을이 평안하게 된다는 토속신앙에 근거하여 쌓아 올린 돌탑이다.
오늘 가기로 한 석병산 정상 일대가 살짝 구름에 덮여있다. 정상부의 바위가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고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성황교를 지나 오른쪽 상황 지미 방향을 날머리로 잡고 왼쪽 고병이재 방향으로 오름길을 잡는다. 초행길 원점회귀인지라 순간 끌리는 마음대로 길을 가게 된다. 옥계항으로 흘러드는 주수천을 옆에 끼고 긴 포장도로를 걷노라면 저도 모르게 산골 마을 푸근한 정취에 푹 빠져든다.
“이리 오너라.”
하산할 즈음 아궁이에 지핀 불이 굴뚝으로 모락모락 연기라도 뿜어 올린다면 허기진 시장기에 아무 대문이나 열고 한 끼 시골 밥을 청하고픈 분위기다.
한여름인데도 그다지 덥지 않다. 둘러보니 이곳은 연중 계절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을 듯하다. 어딘지 모르게 늘 그대로일 것만 같은 느낌, 세월의 흐름을 과학 혹은 문화의 변화와 동일시하지 않는 곳. 그래서 정겨움이 진하게 묻어나는가 보다.
영글기 시작하는 청포도 밭을 지나고 절골 다리를 건너면서 석화 동굴 길로 진행하게 된다. 가지런히 잘 쌓아 올린 방사탑을 또 보게 되고 꿀벌 꼬인 무궁화, 철 이른 코스모스, 군침 돌게 하는 산딸기 핀 길을 걷다 보면 마을 가장 안쪽에 산계리 3층 석탑이 나타난다.
강원도의 산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 도봉산역이나 수락산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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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6km의 포장길이 끝나면서 왼편 등산로로 들어서면 석병산으로 오르는 실질적 들머리이다. 여기서 정감 가득한 마을을 뒤돌아보는데 왠지 모르게 입대하면서 고개 돌려 집을 돌아보는 느낌이다. 어머니와 동생이 손을 흔들던 아스라한 시절이 지금 여기서 떠오르다니.
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답지인 산, 그것도 벽지의 먼 산을 혼자 처녀 산행하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입대하는 기분뿐 아니라 지나온 시절 곳곳, 추억의 마디마디들이 한 단면처럼 떠오르곤 했다.
“아직 감성이 살아있어서 그럴 거야. 감성이 살아있다는 건 아직 젊다는 증거야.”
마지막 민가를 지나 잡목 무성한 숲길을 감성 넘치는 젊은이답게 힘차게 걸어 오른다. 길은 좁고 엉성하지만 비교적 뚜렷한 편이어서 코스를 놓칠 염려는 접어도 될듯하다. 하얀 물봉선이 수줍음 띤 모습으로 다소곳이 외지 손님을 반겨준다.
소담한 새 며느리밥풀꽃 군락 인근에는 뭇 짐승들이 드나들며 땅을 파헤친 흔적이 확연하다. 멧돼지는 물론이고 여우나 스라소니도 보게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차단 울타리를 넘어 잠시 석화 동굴 입구를 들여다본다. 커다란 바위 아래 굴 입구를 철망으로 막아놓았다.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쌍둥이 왕자를 가둬놓은 장소가 연상되고 암굴 왕,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석화 동굴, 강릉 옥계 굴이라고도 불리는 이 굴은 약 600m의 길이에 총연장 1km나 되는데 거대하고 화려한 종유석, 석회 화폭石灰華瀑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방기념물 제37호로 보존되고 있다.
석화 동굴을 지나 능선 쉼터까지 가파른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능선 쉼터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고병이재 방향으로는 잠시 고도를 높이게 된다. 분홍 솔나리들 다소곳이 반기는 비탈 숲 지대를 지나다 모처럼 시야가 트인 조망 장소에 이르러 아래로 들머리 산계리 마을의 민가들을 내려다본다. 우측 위로는 가까이 백봉령에서 석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늘어져 있다.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비우고 또 비워 더 비울 게 없으면 그 사람은 이미 성자요, 부처이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무엇엔가 분노하는 것은 아직 다 비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내의 피부에 도드라진 종기가 덧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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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 백두대간 정기를 받아 성균관 유생이 되고자 많은 문인이 찾았다는 유생 바위를 만난다.
“여기까지 올라와 공부했다고?”
살펴보니 학습 분위기가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바람 솔솔 일어 낮잠 주무실 유생 후보들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든다. 유생 바위를 지나 바위 너덜지대를 넘어서서 송곳처럼 삐죽 솟은 바위가 있는 전망대에 이른다. 처음 접하는 제대로 된 조망 장소인지라 눈이 밝아지고 속이 열리려는 기분은 건너편 자병산의 잘려 나간 정상부를 보면서 사그라지고 만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만끽하러 여기 온 건데.”
백두대간 훼손 지역 중 가장 손꼽히는 현장이 광산이다. 산업자원공급이라는 핑계로 수많은 기업이 광산개발을 위해 백두대간 자락으로 몰려들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석회석 광산, 채석광산, 금속 광산, 석탄 광산들이 그 대상인데 그중 석회석 광산이 심각한 지경이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곳이 라파즈 시멘트사의 동해시 자병산 석회광산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사에 의해 국내 으뜸의 석회암 식물 보고인 자병산 정상이 싹둑 잘려 나간 현장을 직접 바라보면서 가슴이 막히고 불끈 주먹을 움켜쥐게 된다. 백리향, 솔나리, 가는 대나물 등 희귀 식물의 터전인 자병산 정상 일대가 지도상에서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나쁜 놈들, 몹쓸 놈들.”
광산개발을 위해 이토록 넓은 산을 절개지로 훼손시켰는데 이러한 작업과 수거를 위한 산림파괴형 도로는 얼마나 광범위하고 심각할 것인가. 백두대간 백봉령과 삽당령 사이에 아직 때 묻지 않은 원시림을 지닌 석병산을 찾아와 지척의 뭉개진 자병산을 보다가 등을 돌리지만 끔찍한 산림 훼손과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눈에 담은지라 욕이 절로 나오고 오르는 걸음이 무겁다.
환경과 연계하여 산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인식될 무렵인 1992년, 유엔 환경 개발 회의는 산의 보존관리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유엔총회는 그해를 ‘산의 해’로 선언했고, 2003년부터 매년 12월 11일을 ‘국제 산의 날’로 제정한 바 있다. 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산악문화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환경문제 해결 대안 중 하나로 산을 주시했고 산림에서 나오는 다양한 자원과 그 가치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엔을 통한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세계 각국의 수많은 민족이 청정 환경자원을 보존해야 하는 책임감을 지니고 산을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며 환경의 낭비를 극소화해야 할 것이다. 산은 인간 삶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몰상식한 개발을 보면서 지구가 더욱 빨리 온난화되고 금세라도 엘니뇨가 반복될 것처럼 느껴지더니 갑자기 후덥지근하기 시작한다. 노란 금마타리와 보라색의 솔체를 보면서 엉킨 기분이 살짝 풀어진다.
정글처럼 좁은 숲길을 뚫고 지나자 이름 그대로 병풍 같은 바위가 보인다. 석병산 정상이다. 일월봉이라고도 부르는 정상에 해발 1055m의 정상석이 낮게 세워져 있다. 자병산을 건너뛰어 만덕봉과 대화실산을 대면하고 어느 쪽인지 정선과 동해를 연결하는 백복령을 가늠해본다.
지척에 뻥 뚫린 바위틈으로 건너편 수림이 보이는데 이곳이 석병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일월문이다. 바위 건너로는 고개를 내밀어서도 안 된다. 깎아지른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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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약 1.5km 쉰길폭포까지의 하산 길은 급경사의 연속이다. 가이드 로프가 있어 따라 내려가며 수월하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여기에 등산로를 개척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난도 높은 길이다.
하산하며 다시 바위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아들바위라고 불린다.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 적혀있다.
“소원을 빌러 여기까지?”
여기까지 소원을 빌고자 올라올 정성이면 이미 그 소원은 이뤄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기도란 속에 지닌 열정의 발산이므로.
“산에 올라온 이의 소원이 달리 무엇이 있을까.”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 외에 무얼 더 등에 지고 내려갈 것인가. 그래도 다시는 우리나라 백두대간이 어떤 명목으로도 더는 훼손되지 않길 소망하며 아들바위 앞에서 손을 모아 본다.
“그리고 하나만 더…… 머리카락 백발 되고 파뿌리 되어서도 산과 가까이할 수 있게 하소서.”
결국, 소원의 개념을 욕심으로 폄하시키고 만다. 굵지 않은 물줄기가 빠르지도 않게 길게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연출해놓은 것 같다. 50명의 신장과 그 높이가 같다고 해서 유래된 쉰길 폭포이다. 폭포 주변과 계곡 곳곳에 푸릇하게 자라는 이끼는 다른 곳에서 본 것과 달리 생명력이 넘친다. 그만큼 순수한 자연 그대로이다.
좀 더 내려가자 초라한 움막 하나가 을씨년스레 세워져 있는데 삼신당이라는 안내판이 옆에 있다. 이곳 마을 노인의 꿈에 나타난 산신령이 이르는 대로 이 움막에 왔더니 주변에서 산삼 세 뿌리를 캤고, 그 후 그 자리에 있던 움막을 헐어 정성껏 건물을 지었더니 다시 서른여섯 뿌리의 산삼을 캐어 그때부터 여길 삼신당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삼신당三神堂이라 하면 천天 · 지地 · 인人의 삼신을 모시는 곳으로 통하는데 여긴 산삼을 캐기 위한 삼신당蔘神堂인가 보다.
“서른여섯 개 모두 튼실한 산삼이었을까.”
허름하게 나무판자로 움막을 세우고 산삼 서른여섯 뿌리를 얻었으니 아무리 작은 뿌리였어도 절대 밑지지는 않았을 거였다. 다시 더 큰 빌딩을 세워 더 많은 산삼을 수확했다는 후일담이 없어 다행이다.
계곡으로 들어서 흐른 땀을 씻는다. 맑고 찬 물, 풍부한 수량, 크고 작은 다양한 폭포들. 지루할듯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석병산을 즐기다가 성황뎅이 날머리에 닿았는데 아직 한여름 오후의 태양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작열한다.
때 / 여름
곳 / 산계리 마을 - 산계리 3층 석탑 - 석화 동굴 - 고병이재 - 석병산 - 쉰길폭포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f-FUlwZAw7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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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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