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지산행_ 강원도 영월의 단풍산과 매봉산
단풍산과 매봉산에서 산 찾는 명분을 세우다
K 산악회에서 마련한 오지 산행, 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산악 대장이 오늘 산행 일정에 대해 안내한다. 멘트를 마치고 마이크를 내려놓자 옆자리에 앉은 젊은 친구가 몇 마디 말을 건네더니 대뜸 묻는다.
“산엔 왜 가시는 거예요?”
자신은 산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산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머리를 긁적거린다. 산악회 버스에 꽉 찬 인원,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모처럼의 휴일에 산으로 모여든다는 게 사뭇 의아한 모양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일행을 따라왔다는 옆자리의 새내기 친구에게 “거기 산이 있으니까.”라고 대답해 줄 수는 없었다.
1924년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실종되었다가 75년이나 지난 1999년에야 시신이 발견된 조지 맬러리의 말을 패러디하는 건 질문의 진솔함에 견줘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산이 자꾸만 끌어당기거든.”
그렇게만 답하고 말았으나 구체적으로 속마음을 알려주고픈 생각이 든다.
“산의 분신이 되고 싶어서, 바위에서 분리된 돌 부스러기가 되고 싶어서, 그러다 한 줌 흙 되어 밟으면 소리 내는 마른 땅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면 다시는 산을 찾지 않을 것 같아 웃음 흘렸을 뿐이지만.
강원도의 산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 도봉산역이나 수락산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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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암릉의 우중 산행
버스가 31번 국도에서 태백 방면으로 향하다가 영월 솔고개에 섰을 때는 오전 11시 무렵이다. 습한 안개에 하늘빛도 탁한 재색으로 변해 금세 비라도 올 것 같은 날씨다.
옆자리에 앉았던 신참이 일행들과 합류해 스틱을 펴면서도 불안한지 자꾸 궂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안전 산행하면서 아까 질문에 적당한 답을 찾아보시게.”
신참의 어깨를 다독이며 엄지를 추켜세우자 순한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살아가면서 느낄지 모르겠지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산 아래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더라. 고뇌의 삭힘과 환희로의 변화, 바로 그 원천을 지독한 산행 후에야 어렴풋이 발견하게 되더라.
그래서 험산 준령엔 산신山神이 있지 않고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거지. 산이 언제 그들에게 왜 오느냐고 묻던가. 산에 왜 가느냐고 묻고 나름대로 대답하는 건 오직 사람들뿐. 산은 늘 거기 그 자리에 있되 오는 이들을 한껏 품는 게 다 아니던가.
온 산야를 초록에서 갈색으로 변색시키는 계절의 시간 이동을 둘러보는데 한 그루 소나무가 눈길을 끌어 세운다. 300년 수령의 명품 소나무가 단풍산을 배경으로 의연한 자태로 중심을 잡고 있다. 처음 만나는데도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품새다. 반신불수가 되기 전 속리산의 정 2품 송을 닮은 모양새다.
“그것 참!”
참으로 기이한 역사의 엮임을 여기서 접하게 된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에 행차할 때 소나무 가지를 들어 올려 가마가 제대로 통과할 수 있도록 하자 세조가 정 2품의 벼슬을 하사했다는 설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여기 솔고개 소나무는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서 시해된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넘어가던 도중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배웅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왕권을 잡아 승자가 된 세조로부터 벼슬을 받은 소나무와 패자의 서러운 영혼을 달래준 소나무, 이 소나무들과 함께 경상남도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가 우리나라 3대 명품 소나무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일화를 더듬다가 소나무의 우아한 자태에서 눈을 떼고 등산로로 진입한다.
청솔식당을 지나 포장된 농로 옆으로 큼직한 율무밭이 있고 여름부터 피었을 코스모스들이 더는 서 있기 버겁다는 양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다.
단풍산 들머리이자 양짓말이라고 불리는 동네에 접어들자 뿌옇게 흐린 하늘이 결국 비를 뿌린다. 모처럼 우중 산행을 하게 됐다. 나뭇가지에 리본이 수북하게 매달린 걸 보니 꽤 많은 산악회에서 다녀간 곳이다.
송신탑을 지나면서 드문드문 늘어선 커다란 노송들이 빗물을 막아준다. 초가을 우거진 숲길이지만 단풍나무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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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어지지 않은 등산로는 급경사의 연속이다. 다소 버겁게 주능선 절벽 밑에 올라서서 거푸 절벽 아랫길을 걷게 된다. 무척 거친 바위 능선길이다. 아래 솔고개에서 보았던 솔나무 뒤로 병풍처럼 둘러친 단풍산 정상 일대. 그 절벽 군 아래를 걷는 중일 것이다.
첩첩 주름 깊어 아주 잠깐 볕 들다 만 암벽의 어깻죽지는 막 맞은 가을비로 인해 올리브유를 잔뜩 발라 몸을 돋보이게 하는 보디빌더처럼 우람한 근육을 자랑한다. 초록에 시들해져 붉게 치장하고픈 나무들은 치렁치렁한 이파리들을 채색시키려 안달이다.
어느 산이든 능선이 바뀌고 봉우리 하나 또 넘으며 음지와 양지를 들락거릴 때마다 산은 거침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정지되곤 하는 현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부수는 곳, 편협한 시각을 새로이 자각시키는 곳. 거기가 바로 산이다.
라식하러 안과에 가는 것처럼 산도 그래서 가는 거지
절벽 끄트머리에 이르러 설치된 밧줄을 잡고 좁은 경사로를 오르자 바로 주 능선이다. 좌측 조망터에서 버스로 달려왔던 31번 국도를 내려다보고 태백산에서 뻗어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흐릿한 백두대간을 눈에 담는다.
무성한 활엽수 틈으로 수년간 쌓였을 낙엽에 덮인 엉성한 등산로를 헤쳐 나가 겨우 단풍산 정상에 도착한다. 영월군에서 세운 아담한 정상석에 해발 1150m라 적혀있다. 3km 남짓 걸어왔다. 1000m 넘는 산으로서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이다. 조망이 좋은 주변 바위에 올라가야 할 매봉산과 주변 사방을 살펴본다.
산에서 역사를 읽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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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전설을 듣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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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가 뿌리지만 주변의 견고한 산세와 푸근함을 안겨주는 조망 때문에 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다. 사방 원근 두루 시선을 두고 느끼노라면 수시로 자태를 달리하는 곳, 그 달라짐이 새로운 조화의 모습임을 깨닫게 하는 곳. 사계절 다름없이 산은 가슴 한복판을 톡 쏘아 속을 산뜻하게 해 준다.
맑고도 신선한 산만의 특유한 정기이다. 아까 산에 가는 이유를 물었던 새내기 친구가 옆에 있다면 덧붙이고 싶은 사족이 떠오른다.
“아까 아래에서 느꼈을 때의 산과 지금 올라와 느끼는 산이 다르지?”
수학 공식이나 과학원리 같은 걸 통해 이해한다면야 얼마나 쉬울까.
“아름다우면 그냥 아름다운 것처럼 그 이유는 이해하는 게 아니거든. 그냥 다가와 가슴에 꽂히는 거거든.”
결국, 이해를 돕기 위해 떠벌린 사족으로 그 친구는 더더욱 산이라는 곳이 이해 난의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멋쩍게 모자를 고쳐 쓰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다.
시야가 가려져 더욱 지루한 매봉산으로의 능선은 고만고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게 되는데 때론 등산로가 옅고 좁아 자칫 길을 놓칠 수도 있겠다. 축축한 산죽과 잡풀 더미를 밟으며 서봉에 이르자 비가 가늘어진다.
첩첩이 산, 골과 골 사이의 작은 마을, 강원도 오지의 산에서 보는 여느 조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 보는 데가 아닌 곳이 산이잖은가. 물리적으로 감탄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감동을 당겨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이 아닌가.
이름 모를 저 산 중 어딘가에서 여기 단풍산과 매봉산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너머로도 내가 가야 할 산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욕심이라 할 만한 것들을 버리고 정작 필요한 그 무엇을 채우는……, 내던짐과 새로운 채움은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 눈앞의 이해타산에 급급해하지 않는 것.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비록 험한 길 돌아갈지라도 궁극에 다다르는 길을 택하는 것. 작은 눈, 편협한 시각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산의 가르침. 교실 칠판에서의 배움만으로는 교정시키기 힘든 무제한의 시야.
“그래서 사람들은 산으로 가는 거지. 라식을 하러 안과에 가는 것처럼.”
명산은 명산대로의 우아함과 기품이 있지만, 브랜드를 갖지 못한 산일지라도 산으로서의 존재감을 지니지 못한 산은 본 적이 없다. 산은 산이다. 그러한 산이, 접하지 못한 산이 아직도 너무나 많기에 산을 향한 일정은 언제나 잡혀있다. 또한, 그러하기에 열정이 식지 않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매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날카로운 바윗길이 미끄럽다. 해발 1286m의 매봉산 정상석도 단풍산의 그것과 같은 모양이다. 아마도 같은 석수 공이 만들었을 거라는 엉뚱한 의식을 하게 된다.
주위 산군들이 태백산, 함백산, 백운산, 두위봉, 소백산 들일 텐데 뿌연 연무와 나무들 때문에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들 산으로 인해 비록 재야에 묻혀 이름 떨치지 못한 단풍산과 매봉산이지만 그럼으로써 더더욱 자연 그대로의 백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보는 중이다.
하산, 멧뎅이재를 지나면서 무척 가파른 내리막이다. 허연 속살 드러낸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 큼직한 바위들 수북한 멧뎅이골을 통과하고 물가의 통나무 다리를 건너가면서 산행은 마무리된다.
강원도 오지의 두 곳 연계 산행, 자연을 주제로 하여 라르고Largo의 느릿한 리듬에 장중한 멜로디로 이어지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듯하다.
때 / 가을
곳 / 산솔마을 솔고개 - 송전탑 - 1072m 봉 -1150m 봉 - 단풍산 - 섬지골 안부 - 매봉산 안부 - 서봉 - 매봉산 - 멧뎅이골 – 아시내
※ 본 포스팅의 글은 2022년 8월에 실시한 산림청 주관 ‘제 22회 산림문화작품 공모전’ 수필부문 수상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5H51WfKYG0
경상도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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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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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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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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